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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13. 2021

해달라면 해주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입덧은 요지경

 토요일은 목련이며 조팝나무며 벚꽃이며가 두루두루 알뜰살뜰 화창한 날씨였다. 그런 날에 나는 개강 후 처음으로 학교에 가 교수님도 뵙고 다른 석사과정생들과도 처음 얼굴을 보고 한참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차로 왕복 세시간. 차례차례 교수님과 상담을 하고 나니 또 그 시간이 서너시간. 몇개월만에 처음으로 바깥양반을 집에 혼자 두고 주말에 외출을 나온 것이라 신경도 쓰이고 가는 길이 서둘러지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이 너무나 좋은 날씨에 스프링롤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앞 뒤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포근한 봄바람을 맞으며 만드는 스프링롤이라면 얼마나 봄일 것이야. 바로 며칠전에 만들고 남은 김밥재료들도 있어서 장을 볼 것도 없다. 이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아침을 차릴 수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교정을 잠깐 거닐며 바깥양반에게 내일 아침은 스프링롤이라며 전화를 걸어서 안부차, 통지를 했는데.


"아 왜 멋대로 정해!"


 응? 


"아니...스프링롤이...왜? 싫어?"

"내일 아침은 맥모닝 사와요."

"헐."


 이런 못된 녀석같으니. 그러니까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건 단지 스프링롤을 점심 때 차리고 아침 메뉴로는 맥모닝을 사오라는 분노였던 것인가.  


 입덧으로 인하여 바깥양반의 식투정은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성가심으로 내겐 다가왔다. 일단 김치나 고기 모두 식탁 위에 오르지 못하고, 먹지 못해 괴로운데 먹지 못하는 욕구불만은 쌓이니 저녁에 속이 좀 편해질 때쯤은 꼭 맛있는 음식으로 위로를 받고싶어한다. 그래서 외출도 못하는 판국에 외식 지출은 다시 획기적으로 늘었다. 쌀이 떨어진지 한달이 되어가는데 김밥을 말 때 한번 빼고는 아직 밥을 짓지 못하고 있으니. 


 일주일에 최소 네번 이상, 많게는 다섯번까지는 배달음식을 사 먹으니 돈도 돈이려니와 주부인 내 입장에서는 냉장고의 식재료들이 문제다. 그래서 스프링롤이 딱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바깥양반 도시락 싸주려고 유부초밥 고명으로 만든 다진소고기 볶음. 한번 먹더니 못드시겠단다. 냉동실에 얼어있다. 엄마가 챙겨주시는 돼지고기. 역시 못먹고 얼어있다. 그 와중에 쫄면재료로 사온 상추와 깻잎 등. 아직은 상태가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한시 바삐 먹긴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이건 또 내 사정이고, 


"배고파."

"어어 가고 있어."

"파스타 시키자."

"음..."


 파스타. 파스타라. 나도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다만 파스타를 굳이 시켜야 하나? 스프링롤을 만들겠다는 의사결정이 내 속에서 내려진 상황이라, 저녁은 뭐라도 또 내가 할 생각이 들고 있었다. 피자랑 파스타. 파파존스에서 하나씩 시켜서, 오븐파스타는 바깥양반 먹이고 피자는 나눠먹고 남은 건 내가 아침으로 먹으면 얼마나 즐거운 저녁식사, 그리고 두번의 아침식사가 되겠냐만은 다른 것도 아니고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굳이 배달을 하자니. 안될말씀이지.


"내가 해줄게 파스타. 오늘은 해먹자."

"아냐 두개 동시에 먹고 싶어서 그래."

"응? 뭐?"


 입덧!


"...해줄게 해줄게."

"응 그럼 크림이랑 오일 해줘."


 야 이건 좀 예상을 못했다. 생전 안하던 주문을 이렇게 하는구나. 크림이랑 오일이라니. 나는 차를 몰며 길고 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르는데...

 이런 젠장. 빨리 집에 가겠다고 서두르다가 크림소스 사는 걸 깜빡했다. 그래서 임시변통으로 해결을 했다. 일단 우유랑 버터랑 적당히 끓이고 난 뒤에 크림스프 분말을 크게 세스푼 정도. 그리고 나서 치즈를 한주먹. 길이 막혀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땐 여섯시반은 넘은 시간이었고, 바깥양반은 컵라면에 과자까지 드시고나서도 배가 고프다고 성화였으니, 두개의 파스타를 동시에 하느라 나는 간이고 뭐고 볼 계재가 아니었다. 일단 후다닥 면부터 삶아서 채반에 건진 뒤에 솥엔 엉터리 크림파스타, 팬에는 오일파스타. 냉동실에서 발굴해낸 코스트코 베이컨과 마늘 두가지만으로 정말 후다닥 대충 만들었다. 


"으윽. 이거 치즈 왜 넣었어?"

"응? 으응? 치즈...먹었잖아. 피자도 지난주에 먹었...잖아요..."

"몰라 안먹혀."


 그러면서 바깥양반이 크림파스타 접시를 내게 죽 민다. 입덧! 


 파파존스 피자와 코스트코 치즈피자는 잘만 먹어놓고, 집에서 별로 느끼하지도 않게 만든 수제 파스타는...왜...왜 거기에 들어간 치즈는 못먹겠다는 건데...기껏 두개의 파스타를 동시에 하는 이선균에 공효진 같은 시츄에이션으로 고생고생을 시키더니만. 도저히 예측이 안되는 바깥양반의 입덧은 나에게 고스란히 크림파스타를 남겼다. 비로소 자리에 앉아 맛을 봤는데. 맛은 훨씬 더 이쪽이 나은데 오일파스타보다. 그래도 우유를 넣고 해서 완성도 있는 맛인데. 휴.

 그러나 나의 고집은 그 다음날 기어코 다시 스프링롤을 만들게 했다. 아침에, 나는 어김없이 바깥양반에게 맥모닝을 진상하였고, 조모임을 한 뒤에 잠깐 쉬다가 정말로 이번엔 앞 뒤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봄바람 시원하게 맞으며, 당근을 타다닥 채 치고, 다진소고기볶음도 해동해서 팬에 다시 한번 볶아내고, 깻잎이며 상추에, 김밥을 하고 남은 단무지까지. 모두 홀홀 털어 넣어. 또 다시 한시간의 노동이 아깝거나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봄에는 역시 스프링롤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화창한 하늘을 바라볼 때는 말이다. 나는 내 하고픈 음식을 마음껏 했고, 바깥양반이 해달라는 음식 사달라는 음식도 고스란히 해냈다. 


 해달라면 해주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이야. 


"땅콩소스 없어요?"

"어어 잠깐만."


-이정도 난관은 가볍지. 나는 뜨거운물을 끓여 땅콩버터를 게어서 소스를 만들냈다. 거실에 나란히 앉아 봄을, 봄에 담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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