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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26. 2021

한 팩의 우유는 세 잔의 플랫화이트가 되어

직장인 커피 레시피

 급식으로 200ml 우유가 나왔다. 안그래도 우유를 사러 갈까 벼르고 있었는데 잘되었다. 식판을 잔반통에 털고 날아가듯 발걸음으로 교무실에 올라오자마자 냉장고 냉동칸을 열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얼음까지. 


 2년차 쪄죽핫 정회원인 나지만 5월 말인데도 좀처럼 날씨가 쪄죽일듯하진 않고 습하고 느슨한 햇살이 연일이다. 오히려 이렇게 습도가 높은 때엔 고소한 우유의 내음이 당긴달까. 한동안은 커피 원래의 맛에 집중한다고 라떼 류를 마시지 않았지만 이렇게 촉촉한 봄날씨엔 또 다르지. 고소한 플랫화이트가 제격이겠다. 나는 대학교에서 홍보용으로 학교에 나눠준 종이컵에 얼음을 반절 넘치게 담아 내 자리, 미니 카페가 차려진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유를 얼음이 넉넉이 잠길만큼 붓고서 콩을 갈았다.

 올해 들어 변한 게 있다면 콩의 배전도와 숙성기간을 고려하여 커핑노트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전까진 로스팅을 할 때 배전도를 통제하지 못해서 그냥 여러개의 콩을 뒤섞어 마구잡이로 마셨다. 홈로스팅이 당연히 사먹는 것보다 맛이 좋을 수 밖에 없지만 그렇게 마구잡이로 이 콩 저 콩을 볶는 동안 로스팅 레시피나 원두의 종류, 배전도에 따른 품질관리는 잘 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로스팅이 안정되면서 이제야 콩을 고를 여유가 생겼다. 교무실에서 함께 커피를 나누어 마시는 사람들에게도 부탁을 해서 간단하게 채점을 하고 있다. 다른 분들은 재미가 있고 나는 배전도나 생두를 조절하는 공부가 되어 좋다. 성장하고 있다는 뿌듯함. 로스팅에서 자신이 생기고 어떤 콩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내고 있으니 이렇게 여유도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내 손으로 라떼를 타 마시는 건 오랜만이다. 이것도 처음에 커피를 내려마실 때 이리 저리 스팀도 내어보고 하던 시절 일이다. 그때는 시럽이며 연유를 구비해서 장난질을 치는 재미가 있었는데 좋은 원두를 맛보면서 커피맛에만 너무 파고 들었다. 한 몇년간을 커피 맛을 파다가, 로스팅까지 시작하고, 로스팅에 대한 이해가 조금 되면서 이제는 다시 플랫화이트도 만들어먹고 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플랫화이트, 특히 대부분 카페에서 파는 아이스 같은 경우에 양은 너무 작고 가격은 비싸단 말이지. 유리컵은 아니지만 맛은, 역시 내가 내린 커피를 위에 올린 이 녀석이 제격이다. 나는, 커피를 내려 얼음 동동 띄운 우유 위에 에스프레소를 조심스럽게 부었다. 이걸 톡 두어 모금에 털어마셔야지.

 다만 그런데 조금 큰 종이컵 사이즈에 담아낸 플랫화이트라 남는다. 우유가 제법. 이걸 어떻게 할까 두리번 거리다가, 한번에 우유를 털어넣으려다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냉장고로 향했다. 우유의 양을 봐서는 두잔 정도는 나올 것 같다. 얼음을 담으면서 또 두리번. 누굴 줄까. 누구에게 주면 좋나. 하면서. 


 다시 자리로 와 업무 메신저 창을 열어서 아무나 마음에 내키는 사람을 둘 찍고 그들을 위해서 다시 콩을 갈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압력으로 작은 교무실은 커피향이 가득하고, 창 너머에서부터 밀려넘어온 늦은 봄날의 촉촉하고 시원한 바람은, 아이스 플랫화이트의 향기와 함께 진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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