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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22. 2021

귀한 몸이 되어버렸어.

옛 간식거리의 부침에 대하여

“붕어빵 먹고싶다. 홈플 앞에 있는데.”

“붕어…빵?”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바깥양반의 식욕으로부터 시작이 되는데. 붕어빵이라? 호떡파였던 나는 붕어빵이 전하는 겨울에 향기에 이처럼 이따금 생경함을 느끼곤 한다. 붕어빵이라 붕어빵은, 맛이 없지 않은가.


 학교 바로 옆 짬뽕집에 붕어빵 파는 아주머니가 계시다. 겨울철에 한번씩 밖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붕어빵을 사서 나눠먹는 풍경을 볼 때, 그리고 나 자신이 직장동료와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손에 들린 붕어빵을 건내받을 때, 이것은 왜들 먹나 그리 생각을 하곤 했더란다. 본래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 입맛에, 벌써 내일모레면 마흔인 나이. 그러니까 나에게 붕어빵은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입맛에 불과하단 것이다.


 게다가 90년대의 붕어빵이란, 마치 그 시대의 핫도그처럼 언제나 속고명보다는 밀가루반죽의 비율에 매우 높았다. 그 시절의 꼬맹이들에게 팔던 길거리음식이 으레 그러했다. 머리를 물어도, 꼬리를 물어도, 등지느러미를 물어도, 배를 물어도, 어딜 물든 밀가루가 균일하게 입에 잡히면서, 가운데에 든 팥소가 살풋 드러나는 꼴이었다. 그러니, 붕어빵을 어딜 먼저 먹느냐는 식의 심리분석 같은 것이 나왔을 것이다. 붕어빵 틀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머리쪽이 물었을 때 팥소가 많이 입에 들어오니, “붕어빵을 먹을 때 어딜 먼저 먹느냐”라는 질문은 단순히 “팥소를 먼저 혹은 나중에 먹느냐”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어야 옳다. 그런데 머리를 물든 꼬리를 물든 엇비슷하게 밀가루빵과 팥소가 씹히니, 그것은 이제 붕어라는 대상에 대한 생태주의적 관점에서의 심리적 질문이 된다.


 어찌되었든, 대학원 수업을 마친 늦은 시간 나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입술이 튼 바깥양반을 위해 바셀린을 사러 마트에 나왔고, 그때 바깥양반은 마트 옆 붕어빵 가게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밤 아홉시반. 코로롱 시국에 9시를 넘은 노점이 있을 턱이 있나. 그날은 헛걸음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시간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했는데.


“아이 씨 망했어.”

“왜?”

“또 문 닫았어 미치겠네.”


 다음날도 허탕을 쳤다. 오후 여섯시 나절에 불과한데 어찌 붕어빵 가게가 장사를 마쳤단 말인가!


 이것은 좀 코로롱 시국을 넘어선 문제다. 자고로 길거리음식이란 성장기의 어린아이들이 넘치는 활력으로 금새 허기는 지는데, 아직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을 헤메이는 발길에 가볍게 들러 가벼운 가격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아니던가. 오후 여섯시면 한창 태권도 도장이며 수학학원이며, 집에 가지 못하고 배회하는 아이들이 그득한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장사를 접고 들어가셨을까 말이다.


 나는 낭패감에 다음 날을 기약했고 뜻밖에도 그날은 빨리 왔다. 조퇴를 하고 바깥양반을 데리러 집으로 간다. 백신 접종을 위해서다. 아이를 낳고 몸이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로 밀리고 밀려, 연말이 되어서야 좀 여유가 생겼다. 간단히 접종을 마치고 나니 아직 시간이 무척 여유가 있었고, 병원 가까이에 있던 붕어빵 가게는, 당연히 열었다. 하여 나는 바깥양반에게 말했다. 


"어 저기 붕어빵 열었다."

"진짜?"

"응. 들어가 있어. 사서 갈게."

 

 붕어빵 가게에는 대여섯명이 줄을 서 있다. 아주머니께서는 느릿느릿 한가롭게 손을 놀린다. 붕어빵을 줄을 서서 먹었던가? 알 수 없다. 어린 시절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딱히 그것을 자주 먹지 않아서 내가 문외한인 탓일 게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양화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는 살아남았고 누군가는 여전히 붕어빵을 굽는다. 다행히 그것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자주 가는 마트 앞에 있으니 다행한 일이고 고마운 일. 맛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만 그런데, 내가 지금 발견한 것은 또 다른 광경이다. 붕어빵을 사러 온 사람들 중에 어린 아이들이라곤 없고, 모두 어른들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나는 바깥양반이 마트에 가서 척척 과자를 카트에 올리는 것을 볼 때마다 사라진 옛 간식들을 떠올리곤 한다. 어릴 땐 과자보다도 찐 감자와 고구마, 생밤과 찐밤에 손이 자주 가곤 했다. 알밤을 문구용 커터칼로 자르다 보면 거기서 벌레가 꼭 한마리씩은 나온다. 처음엔 무서워서 버렸다가, 사실은 벌레먹은 밤이 맛난 놈이라는 것을 사촌형에게 듣고, 언제부턴가 벌레먹은 쪽을 도려내고서 아작아작 신선한 밤을 씹어먹곤 했다. 


 그러던 생밤, 고구마, 감자 등이 간식으로서의 자리를 잃고 집의 "과자바구니"엔 항상 넉넉하게도 과자가 쌓여있는 것이, 비단 우리집만의 사정은 아닐 테다. 붕어빵은 찐고구마가 그렇듯, 알밤이 그렇듯, 번거로움으로 인하여 그리고 그 맛의 단조로움으로 인하여 차츰 먹을거리의 높은 지위에서 서서히 하강해 온 것이다. 요즈음의 어린아이들에게 붕어빵은 제 손으로 깎아먹는 알밤처럼, 어쩌면 멀고 먼 그런 음식일 수도, 그러므로 사양화의 길 속에서 리어카들이 버려지고, 드문드문 남아있는 붕어빵 가게엔 사람들이 줄을 서야 하는 것은 아닐지. 


 오늘처럼.


"아주머니 몇시에 닫으세요?"

"이제 금방 닫어요. 다 썼어."

"아 그럼 여기 서면 살 수 있어요?"

"네 그래요."


 줄 맨 뒤에서 여자분이 묻는다. 넉넉하게 팥소를 붕어틀에 담는 것을 신뢰감과 함께 바라보고 있던 나는, 슬쩍 발 뒤꿈치를 들어 팥소와 크림이 담겨온(어째서인지 슈크림이라고 꼭들 부르는지 모르겠는) 통을 본다. 많이 남지 않았다. 아침부터 5만원치 예약이 있었더란다. 5만원이라, 아주머니께서 붕어빵을 굽는 손이 빠르지 않고 여유롭다. 그래서 줄도 길게 서 있는 것일 터지만, 100개를 굽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그야말로 막막하고 감감하다. 틀에 반죽을 붙고 고명을 잘라넣고 다시 덮고, 뒤집고, 꺼내는 단조로움을 노점에 서서 보내며, 하루를 보내고 또 보내면 쥐어지는 돈은 5만원. 


 먹는 것을 장만하는 수고로움으로 배달앱이란 걸 이용하고, 그마저도 고작 자신이 직접 주변 식당을 검색하는 편의를 덜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요즘의 우리의 먹거리 삶이란, 입에 음식을 집어넣기까지의 과정을 줄이고 줄여, 얼마의 비용을 감당하고서라도 최상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굳어져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붕어빵을 기다리며 서서 관찰해보니,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한 없이 단조로움 반복작업이다. 한번에 5,6인분쯤을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1인분의 조리에 비해 수고는 많이 덜어진다. 보통 음식 장만이 그렇다. 그런데 붕어빵은 1인분을 만들은 100인분을 만들든 들어가는 수고가 정확히 똑같다. 그러니 많이 팔린다고 해서 수익 이상의 비용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편의 추구형의 먹거리에 비해서는 너무나 단순한, 너무나 비효율적인 옛날 음식. 그런, 따끈한 붕어빵.


 그 붕어빵을 사먹음으로써 나는 요 며칠간의 바깥양반의 한을 달래드렸다. 그리고 또한 그 붕어빵으로, 요 근래의 먹거리 풍경을 되살펴보게 되었다. 주변에 몹시나 드물어져서, 붕어빵 앱을 누군가가 개발했고 그 앱으로 붕어빵 위치를 검색하게 될 정도로 귀한 몸이 되어버린듯한 붕어빵이다. 그런데 또, 내 발로 찾아와서 굳이 줄을 서서는, 막 구워져나온 따끈한 그 붕어빵을 받아들고 보니, 너무나 간단하고 편리한 요즈음의 먹거리 풍경에 비해서 한 없이 비효율적이고 수고롭고, 그래서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그런 음식. 게다가 요즘 붕어빵이라 그런지 팥은 그득그득한게 맛도 좋다. 풀빵의 그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사양화의 물결은 피할 수 없다. 지금도 어느 거리에선, 손님을 맞지 못하고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붕어빵 장수들이 있을 것이다. 여느 관광지에나 널린 붕어빵집들에, 빵틀은 제대로 한바퀴 돌아보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일터. 그러면, 그곳의 붕어빵들은 한없이 비천한 몸이 되어, 더욱 더 옛것의 감정을 자아낼 테지. 그럼 그때는 한개에 오백원인 지금의 가격보다, 더욱 비싸지려나. 뭐, 천원이 되든 이천원이 되든, 갓 구워져나온 이 붕어빵의 맛은 어린시절 내 기억과는 천차만별한, 겨울의 특별함이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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