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자존감을 위해 투자되는 나의 노동의 가치란,

얼마나 많은 약간의 노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by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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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 보면 동사 목적어 전, 악!"

"아하하하"


TV 모니터 쪽으로 이동해서 아이들에게 자세히 문장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손으로 짚어주려하다가 그만, 목에 걸어둔 헤드셋의 선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자세가 휘청 흔들렸다. 산만한 덩치의 내가 허우적대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그러니까 지금은 시험을 딱 일주일 앞둔 등교주간의 수업시간이고, 나는 바쁘게 막바지 시험진도의 수업을 하고 있다. 한 학기 내내 아이들에게 자습시간을 딱 한시간 밖에 주지 못한 바쁜 수업 일정 속에서.


"야 애들아 내가 이 헤드셋을 굳이 써야 할까? 써야겠지. 그냥 음질 차이 밖에 없지만!"


그리고 상황은, TV 모니터에 노트북을 연결해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복습을 할 수 있도록 영상을 녹화하고 있다. 아이들이 꽉 찬 교실에서 수업을 하면서 동시에 노트북으로 녹화를 하려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음질이다. 노트북에 내장된 마이크로는 칠판과 대형 TV 모니터, 교탁을 오가며 수업을 하다보면 음질은 교실 벽에 부딛혀 왕왕 울리는 가운데 내 목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 엉망이 된다. 별 수 없이 목에 헤드셋을 걸고 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아 이게 문제다. 그래서 잠시 뒤에는 깜빡하고 교무실에 둔 작대기를 들고 왔다. 작대기가 연장해준 내 팔의 길이만큼 나는 모니터로 발걸음을 덜 옮길 수 있다. 그런고로 목에 헤드셋이 또 걸려서 휘청하는 슬랩스틱을 연출하는 일은 피할 수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의 수업이므로 일반적인 교과서 수업은 영상을 따로 찍어서 복습까지 시켜줄 필요는 없다. 한 시간에 한 페이지 분량의 단락을 나가면서 충분히 꼼꼼하게 충분히 풍성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모의고사는 안그렇다. 한 시간의 두개의 지문을 나가야 하는 수업 일정이다 .아이들에게 학원에 비비거나 지문을 억지로 암기하거나 양자 택일을 강요하는 것 밖에 안나온다.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자발성이 충분하다면, 그런 걱정은 안하겠지만. 가뜩이나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학력격차가 심해진 것에 더하여 아이들의 자발성도 많이 감소해있다. 내가 뭐라도 더 해야한다.


그런고로 모의고사 파트, 15개 지문은 모든 수업을 녹화해서 아이들에게 공유해주고 있다. 온라인 수업 때는 바로 녹화를 하면 되니까 문제가 안된다. 문제는 교실에서의 수업이다. 교실에선 따로 녹화를 해야하는데, 방법은 쉽다. 지금처럼 목에 헤드셋을 착 걸고 줌을 켜고 녹화만 켜면 땡.


다만 꼴이 우습다.


"애들아 내가 이렇게 음질 살리겠다고 헤드셋을 끼고 수업을 하면, 복도에서 보면 얼마나 이상해보이겠어. 힙스터 같잖아?"

"까르르"


1교시부터 아이들이 빵빵 터지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더 있다.


"그런데 말이다 여러분. 잘 들어봐요. 내가 모의고사 리딩 mp3 파일도 만들어줬잖아. 어제 앞뒷반 샘들에게도 줬다. 그러면서 내가 그랬지. 굳이 안 이래도 될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뭐라는지 알아? 굳이 왜 이랬냐고 하더라고?"


그 말 그대로, 아이들이 모의고사 지문 공부를 어떻게든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나는 모의고사 지문의 음성파일까지 따로 만들었다. 그 파일을 만들기 위해 꼬박 두시간 반이 걸렸다. 테크니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시간가량. 그 다음에 녹음하고 체크하는데 한시간 더. 이렇게 아이들과 나누는 일체의 수업자료는 구글드라이브에 폴더를 하나 만들어 단톡방에서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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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굳이 이럴 일일까? 굳이 안 이래도 공부를 할 아이들은 학원에서 하고, 안할 아이들은 보지도 않을 텐데. 각종 파일을 만들어서 관리하고 공유하는 별도의 노력을 한들, 몇명의 아이들이 볼까? 나의 수업을 위한 이런 노력이 의미는 있는 걸까.


있다. 무척 큰 이유가 말이지.


"자 그런데!"


쾅. 아이들은 화들짝. 나는 목소리를 높여서 주의를 환기했다.


"그런데 말이다. 애들아. 자존감이 어떻게 생기는지 아니?"


아이들이 뜬금없는 소리에 날 말 없이 바라본다. 빨리 진도나 나갔으면 하는 아이들이 설마 있을까 싶긴 하지만.


"자존감이라는 게 여러분들 안에 있는 건데 이게 어떻게 생길까? 내 생각엔 자존감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요. 그렇잖아? 이쁘다고 칭찬해주거나. 그러니까 자존감은 내가 어떻게 대접받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져. 내가 이 얘길 왜 하냐면, 내가 이렇게 굳이 하잖아. 앞반 선생님은 굳이 할 필요 없다고, 내가 모의고사 mp3 만든거 굳이 무시하는데. 그럼 그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는, 내 생각엔- 음. 내가 굳이 뭔가를 하는 게 여러분들의 자존감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아까 아침에 머리를 감을 때 했어요. 안해도 돼. 그런데 굳이 한다는 건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그런 대접을 마땅히 받을 가치가 있다는 시그널 같은 거야. 다른 선생님은 안할 수도 있지. 그냥 여러분들이 내가 좀 특이한 인간이구나 그럴 수도 있고. 그런데 그건 아냐. 나는 내가 이런 대접을 여러분들에게 하는 게 여러분들이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언젠가는 믿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해. 막 그런 확신을 갖고 쭉 온 건 아닌데, 아마 그런 생각을 언젠간 하게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아 이제 빨리 진도 나가야하는데. 말 너무 많이 했다. 자 여러분. 내가 열심히 하는 게 내가 이상한 건 아냐. 선생님은 그냥 여러분들이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게 하려고 이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맞아. 여러분들은 그럴 가치가 있어. 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내가 특이한 거라고 바라보진 말아요. 내가 하는 게 당연한 거고, 다른 샘들이 이렇게 못하는 건 좀 어쩔 수 없지. 근데 그건 그분들 입장이고. 그거랑 달리 여러분들은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 맞다고 생각해.


그런 게 있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토론에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이라고들 해. 그런데 과연? 시간이야말로 가장 비싼 비용인데 그걸 누군가에게 충분히 투자한다는 건 가장 의미있는 시그널을 상대방에게 주는 거 아냐? 그런 걸 다 같이 인내해 가는 거지. 아...이야기가 너무 뻗친다. 수업 빨리 하자. 자 이 지문은 과학지문이라서!"


라고, 나는 수업을 서둘렀다. 있는 시간의 한도 내에서 가장 나의 시간과 노동이라는 비용을 아이들에게 성실히 투여하기 위해. 그리고 수업을 마친 뒤 서둘러 영상을 업로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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