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결말에 관하여

검색 순위에 자꾸 뜨니까...

by 공존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의 결말이 다소 불친절해, 방문자 검색어순위에 “나를찾아줘 결말”이 좀 뜨네요.

(이하 슈퍼 스포일러)


1. 며느리발톱이라는 윤수의 특성은 두번 나옵니다. 첫째 실종자 정보에. 둘째 정연의 망상에.


2. 결말부, 민수의 시신을 끌어안고 아이를 더듬는데, 발을 만지는 정연의 표정에 경악이 스치죠. 네. 며느리발톱이 아니네요. 이 아이는 윤수가 아니었습니다. 이영애의 표정변화 말고는 어떤 설명도 없는

연출이라 혼동이 오기 딱입니다. 독백이라도 넣었으면...결말부에서 영화의 권위가 감소했을 겁니다.


3. 그 전에 또 다른 복선인데요, 민수가 정연을 “엄마”라고 부르기 전에 한참이 걸려요. 너무 뜸을 들인 연출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이 또한 정말로 민수는 처음 보는 아줌마가 와서 아가야 아들아 그러니까 어리둥절한 거죠. 아무리 아이가 두들겨맞있어도 자아를 찾고 각성한 상태인데 눈 앞의 엄마를 한참이나 못알아보는 게 수상.


4. 또다른 또다른 복선. 분명 성장한 민수를 윤수로 착각해서 봐놓고는...바로 그 직후 꿈에서 나온 윤수는 5살 윤수네요. 민수가 윤수였다면, 굳이 물에 젖어서 꿈에 등장한 아들이 11살 민수가 아닌 5살 윤수로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도 복선.


5. 생각보다 감독이 맥거핀 사용을 잘 했습니다. 넙치인가 업치인가 하는 그 이상한 청년...강간살해용의자로 지명수배 전단이 붙어있고 최반장? 그 분도 징역을 살다왔기에 만선낚시 외엔 갈데가 없다는 말을 했죠. 그러나 그런 수상한 복선들이 밝혀지지 않고 영화가 끝납니다. 맥거핀의 좋은 사용 사례죠. 감독이 관객이랑 게임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위에 말한 복선들이 모두 감독의 의도라고 보기에 충분합니다.


6. 어쨌든, 지호가 정연의 아들이 되는 건 예상 가능한 흐름이고 그 뒤에 진짜 윤수와 만날듯 말듯한 장면이 나옵니다만 정연의 표정에서 감정이 드러나질 않습니다. 고아원 아이가 윤수가 아닐 확률이 높죠. 그러나 윤수의 특징인 귀 뒤 반점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윤수일까요?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지호를 아들로 받아들인 시점에서, 그 뒤에 만난 윤수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레이션에서도 말하듯, 그 모든, 부모를 잃은 우리들을 찾아달라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답이죠. 윤수든 윤수가 아니든, 이 아이가 내 아이든 아니든 그들을 찾아가는 그 노력을 함께 해달라는 메세지입니다. 마지막 그 아이가 윤수가 맞고 그래서 정연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아이를 끌어안는 결말이라면 오히려 영화의 주제의식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냥 마음 편히 윤수 계속 찾는 중이라고 보시는게.


7. 여담이지만 물에 빠져죽은 아이. 익사한 아이를

끌어안고 우는 엄마. 파묻혔던 아이의 진실...실종자 가족을 조롱하는 무리. 우리를 찾아달란 메세지...세월호 생각 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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