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윤희에게>

이별 수 십 년 후의 수 일 간

by 공존

부치지 못한 편지에는 전하고자 하는 감정 이상의 망설임이 담긴다. 그리움, 애틋함, 회한, 미움과 같은 응어리진 마음의 지문이 하루 하루 종이에 옮겨지고도 나의 손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그리움, 애틋함, 회한, 미움을 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다. 망설임조차 서로가 알고 있다면 이심전심으로, 서로가 모르고 있다면 그저 타인으로써만.


자녀가 부모의 거울이듯 연인은 서로에게 거울이다. 그리고 헤어진 연인은 깨진 거울과 같다. 그 안에 비쳐보이는 나는 산산조각 갈라져 있을 터이고, 하여, 서로는 여전히 타인이고 만남은 고통이다. 깨진 거울에 손을 뻗는 것은 용기이나 그 조각에 찔려 생길 상처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 때문에 수 십 년째 쥰과 윤희는 외면해왔다. 기억은 공동의 공간에서 각자의 공간으로 옮겨져있으면서도 깨진 거울의 파편은 삶의 길에 잔뜩 깔려있어, 그 위를 걷는 것이 매번 고통이었다고 쥰과 윤희의 삶은 말한다. 그렇게, 조금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와 망설임이 쥰의 고모의 사소한 배려심과 윤희의 딸 새봄의 새 삶에 대한 갈망에 의해 오타루의 겨울 찬 공기로 끌려나온다.


<윤희에게>는 부치지 못한 편지의 망설임이 고스란히 풍경에 옮겨진 영화다. 스무살 무렵에 그들의 마음은 얼어붙었고 그리움은 각자의 방식으로 삐져나오고 있다. 윤희는 사진으로 쥰을 추억하고 쥰은 손편지로 윤희를 추억한다. 쥰의 망설임이 깨어진 것은 쥰의 의지가 아니었으나 그 고동에 윤희는 망설임에서 한발짝 비껴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실체를 눈 아래 감추는 오타루에서 여전히 헤어진 두 연인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침잠을 거듭한다. 두 사람의 멈춰있는 삶을 대변하듯 인물도 서사도 정체 속에 머문다.


한 없이 망설이는 윤희처럼 한 없이 영화는 망설이고 그 감정은 뒤늦게 전달된다. 괜찮을 줄 알았던 이별이 뒤늦게 커져가는 것처럼. 윤희 곁엔 성인으로서의 새 삶과 첫사랑의 설렘을 고스란히 간직한 새봄이 있다. 부모의 정체된 삶을 이끌어가는 자녀의 몫 그대로 영화는 새봄의 행보와 시각을 담는다. 그 속에서 모녀는 서로에게 다가서고 두 사람만의 기억을 사진에 담는다. 과거의 사랑과 만나기 위해 혹은 완전히 떠나보내기 위해 찾아온 이국에서 모녀의 현재와 미래가 차분히 교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소란스럽지 않은 성취다.


차가운 물보라 같은 감정을 얼음 속에 가둔 채로 두시간 동안 유유히 흘러가는, 상처를 가득 안긴 사랑의 후일담이며 찢어진 연인 각자의 후일담이다. 그 안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감정은 충실히 관객에게 전달되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되는 감각 또한 갖췄다. 뒤늦게 알게된 비밀, 뒤늦게 만난 연인, 뒤늦게 흐르는 서사처럼 극장에서 나온 뒤 하루가 지나, 이틀이 지나, 뒤늦게 뒤늦게 마음을 울리고 또 울린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품고 있는 모든 감정을 이처럼 풍성히 담아낸 영화가 흔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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