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하나 손쉽게 얻어진 것이 없더라
무쇠솥.
인덕션이 되는 무쇠솥.
오오오 그것은 인덕션이 되는 무쇠솥.
나는 그것을 왜 샀는가 그것은 하동 여행에 가서 묵은 숙소에서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충동 구매 그러나 이건 못참을 수 밖에 없었던 무쇠솥 이런 무쇠솥은 잘 팔지도 않을 뿐더러 믿고 사기도 어려운 것인데 하동까지 왔는데 무쇠솥인데 인덕션이 된다고 안 살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 게다가 요즘 바깥양반은 새밥 새밥 새밥을 매일 매일 원하시는 입장이신 터라 그렇다면 무쇠솥 무쇠솥에 새밥해서 밥먹기 이 얼마나 좋은 것이느냐...
들기름
들기름
시골에서 짠 들기름
그렇다 이것은 중국산 들깨이긴 하지만 국산 들기름보다 6천원이 저렴하긴 했지만 그래도 12천원짜리 시골방앗간에서 직접 짜낸 들기름인 것이다 어머니 생신 겸 외할머니 제사 겸 하여 엄마를 모시고 가족과 태안을 나는 지난 주에 또 다녀온 것이다 미리 하동에서 사 와 길들여둔 무쇠솥이 있었고 그런데 하필이면 딱 이 타이밍에 아파트 단지에 완도산 전복이 들어왔다고 하여 가서 한봉지 예닐곱마리를 샀고 그때 바깥양반은 오빠 전복 사자 솥밥해먹자라고 하여 나는 전복을 샀는데 마침 들기름도 거의 다 떨어져가서 들기름을 사면 좋긴 하겠지 하고 태안 가기 전날에 전복을 샀고 그다음에 태안 가서는 들기름을 사기 위해 기름집을 찾아서 사 온 들기름 아 그런데 전복이라 전복 전복은 개인적으루다가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귀찮기까지 한데 바깥양반이 전복솥밥을 하시자 하니 아니할 수 없는 내 마음 전복솥밥 아 너의 이름은
전복솥밥 너의 이름은 전복솥밥인 것이냐
그리하여 대강 대강 전복을 손질하여, 무쇠솥에 불을 올리고 나는 뜨순기미가 뿜어져나오는 것을 본다 뜨순기미에 섞여나오는 말간 쌀의 달큰함을 향기한다 달고 뜨거운 그 뜨순기미 이 뜨순기미가 언제 고소한 탄내로 변할까를 생각하며, 나는 전복버터구이도 한다 전복버터구이는 왜냐한 것이냐면 만오천원 전복 한봉지에 든 전복으로는, 이 완도산 전복으로는 솥밥 2인분을 하기엔 너무 벅찬 것이고 그리고 남은 세마리가 있어서 전복버터구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하필 그때 하동에 하필 거기서 무쇠솥이 하필 거기서 들기름 짜는 방앗간 겸 기름집...나오지 않았다면 이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광경이며 존재할 터 없던 풍경일 것이다 나는 이리하여 전복돌솥밥 그것을 생각하며 아 그래도 만팔천원짜리 국산 들깨로 만든 들기름이 나았을 것인가, 소주병 들이 하나에 만팔천원은 좀 과해서 에이 일단 만이천원 중국산 들기름을 샀던 것일 뿐인데 지금 내 마음은 나도 몰라라 하며, 미리 두시간 가까이 불려놓은 잡곡, 보리와 찹쌀과 현미 등등이 섞인 잡곡에 호두 약간, 그리고 전복을 손질해서 넣었다 그리고 양조간장 넉넉히 붓고 들기름도 넉넉히 부어, 끓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꽃게탕을 꺼내 데우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태안 이모께서 우리 일행이 가니 끓여주신 것이다 그렇다 태안 자연산 아 꽃게는 원래 자연산 뿐인가 할튼 태안 산지 직송 꽃게탕으로서 태안 셋째이모께서는 냉동 말고 산놈으로 사느라 알이 좀 작다 하셨으되 이것은 생물로 끓인 꽃게탕이라 맛이 좋은데 이모께서 우리를 싸주셨다 꽃게탕 솥밥을 했으니 이왕이면 한 상 제대로 차리면 좋겠지 그런데 나는 지금 바쁘잖아 퇴근하고 와서 전복솥밥을 하고 있잖아 벌써 전복손질하고 밥하고 해서 얼추 한시간이나 지났잖아 그리고 버터구이까지 하고 있고 그러잖아 전복솥밥에 어울리는 한상을 차리려면 제법 애를 써야할 텐데, 이모의 꽃게탕 한방으로 해결이 되어버린 것이다
태안 사람이니 엄마도 이모도 꽃게탕은 어디 식당과 비교를 하기 어렵게 맛깔지게들 잘하신다 바깥양반과 나는 그런 꽃게탕을, 일년에 두어번은 원없이 먹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랄까 그리하여 상을 대충 차려도 맛나게 될 수 밖에 없는 그런상, 꽃게탕을 데워내고, 버터구이를 썰어서 내고, 밥이 다 된 솥만 들어서 상으로 옮기면 되는, 그런 바쁜 와중의 저녁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밥은 되었다 고슬고슬 밥이 되었다 나는 바깥양반에게 버터구이도 한 김에 솥밥에 버터를 올려줄ㄲ 물었는데 바깥양반은 됐다고 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복버터구이를 한 버터를 몇술 찍어 나도 먹고 바깥양반도 주었다 버터의 풍미가 전복의 풍미와 어우러져 더욱 맛난다 이 맛은 제주도에 가면 로컬찐맛집 누룽지식당에서도 맛볼 수 있을 터인데 그곳에선 해물솥밥에 마아가린을 따로 내어준다 그래서 마아가린을 솥밥에 비벼먹는 완전...맛있는 그런 식당인것
그리고 나는 모처럼만에 숭늉까지 완식을 했다. 3인분이 나온 전복솥밥은, 1인분은 통에 담아 냉동시켜, 다음날 바깥양반이 아침으로 드셨다. 전복 게우로부터 나온 색으로 인하여 더욱 진한 숭늉의 빛채가, 구수한 쌀누룽지의 향과 어우러져, 나를 동심으로 인도한다.
어린 시절 전기밥솥이 그렇게 쓸만하지 않던 시절에 엄마는 끼니 때마다 이렇게 솥에 밥을 하셨다. 어린 나는 꼭 밥을 먹은 뒤에 숭늉까지 먹었다. 어느덧 옛날사람에 가까워진 나에게 솥밥에 숭늉은 기억 밑자락의 맛이다. 아마 바깥양반도 마찬가지일 거이라, 이처럼 무쇠솥에 한번씩 해먹는 밥에 우리 모두 설레고, 즐거운 것일 테지.
나는 식사를 마친 뒤에 솥을 정성들여 닦고, 기름칠을 해 수납칸에 넣어두었다. 길들이기. 솥 요리의 알파요 오메가인 그 일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로 하고 있는 2022년의 우리의 생활. 그리고 저마다가 추억하는 30여년 전의 과거가 있고, 아기 동백이가 앞으로 커서 기억해나갈 30, 40년 뒤의 미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야 짧고 유행도 수시로 변하는 것이지만, 이 따끈한 무쇠솥에 갓 지은 고슬한 쌀밥, 그리고 누룽지와 숭늉이라면 그 어떤 각박한 삶 속이더라도 그날 하루, 정말 마음도 뱃속도 편하고 편한 그런 시간이 되지 않을까.
조각조각 모아진 이 전복솥밥에 그날 저녁 나의 시간은 더 없이 바쁘고 분주하고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사실 잘했다. 하길 잘했다 무쇠솥에 밥지어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