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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내를 위한, 파스타 만들기

톨스토이의 세가지 질문

by 공존

꼭 일은 한꺼번에 터진다. 아침에 출근을 하다보니 차에 경고등이 뜨는데, 타이어 문제가 있다. 하는 김에 엔진오일도 갈고, 이리저리 퇴근길에 차를 수령키로 했다. 그런데 바깥양반, aka 아내 님에게도 사정이 생겼다. 원래 집에 문화센터 메이트를 초대해 같이 놀고 저녁도 사먹고 할 예정이었는데, 그쪽 집에 에어컨 수리 기사가 오기로 해서 바깥양반의 저녁 시간이 비어버렸다. 이 타이밍에 나는 여섯시반에 연구회 모임이 있어서 집을 나가야 하니,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상황은 이렇다.


바깥양반은 저녁 식사가 붕 뜨게 되었고, 나는 차량 정비와 회의로 저녁을 차려줄 시간은 부족하고, 그렇다고 신경을 안쓰면, 그건 좀 그렇잖아.


이때쯤 나는 1학년 수업으로 톨스토이의 '세가지 질문'을 다루는 단원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떤 왕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가지 것들, 다시 말하여 가장 중요한 사람, 가장 중요한 시간, 가장 중요한 일을 묻기 위해 현자를 찾아가는데, 그 현자의 오두막에 머물며 그의 일을 거드는 동안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거기에 도착한다. 그 남자를 치료해주고 나니 그 남자는, 사실 왕을 죽이러 온 원수였으며 오히려 왕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한 것에 대해 감사하며 그를 섬기겠노라고 말한다. 그 뒤에 왕과 현자는 대화를 나누는데, 왕이 현자를 돕고, 남자를 도왔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일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시간은 그 일을 하는 바로 그 순간, 현재인 것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


흠....

목살을 굽고, 파스타를 끓이며 그 생각을 한번 해본다. 집에 온 것은 5시 45분, 그리고 내가 나가야 하는 시간은 6시. 15분 밖에 시간은 없고, 그 사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 바깥양반, aka 아내를 위해, 밥 차리는 일을.


나는 10분의 시간을 목표로 잡고 최대한 빨리, 물론 그 와중에 아기도 한번 안고 달래준 뒤, 저녁을 차리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엔 오로지 이 저녁 식사 말고는 다른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실제로 한가지에 집중 전념하는 행위의 효과라고 해야 할까. 정신이 없지. 물 올려, 고기 꺼내와, 고기 구우면서 파스타 꺼내, 파스타 삶으면서 고기 뒤집어. 파스타 끓이는 전용 식기라도 사야할까 싶지만, 구우우욷이 그런, 노동력으로 해결할 사소한 편리함이 궁하지는 않다. 그리고 짬을 내 냉장고에서 라구 소스를 꺼내온다. 라구소스는 지난번에 아란치니를 만들 때 몇시간이나 끓여 만들어뒀다.

사실, 이, 요리를 한다는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하나의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다른 재료들과 어우러지도록 해 만들어내는 하나의 메뉴엔 Ctrl+Z 버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Shift+Ctrl+Z이라면 모를까. 한번 조리를 하고 나면 거기에 다시 양념을 하고, 다시 가열을 하는 것은 모두 반복, 반복, 반복의 반복. 그것이 종결적인 행위로서 맛이 더해지는 것 뿐. 재료를 조리 이전으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 그걸 먹어 없애야 하니, 최상의 맛이 되지 않으면 남는 건 아쉬움 뿐.


목살 스테이크를 하는 계획이었으므로 토치로 겉을 굽는다. 10분 내에 마쳐야 하는 요리인데 스스로 생각해도, 굳이? 인가 싶으면서도, 옛날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10분만에 요리를 척척 완성하는 쉐프들을 보면 이정도의 기술을 뺄 일도 아니지 싶다. 스테이크라고 이름을 붙일 거라면 불맛은 내주어야지 말이다. 토치로라도.

"자."

"오우."


진짜 급박하게 만들고 나니 세상에 마상에 7분만에 요리가 끝났다. 집중의 힘이란 굉장한 걸, 이런 생각도 들다가도, 좋아할 일이 아니다 사진을 찍고는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몸을 돌린다. 아이와 우리 세탁물을 분리해서 빨래를 하다보니 타이밍이 어정쩡해질 때가 있다. 문화센터를 다녀와서 보니 아기를 입힐 옷이 없고, 바깥양반은 내게 세탁을 서둘러달라고 한 것이다.


덕분에 피클도 올려주지 못한 식탁이지만 피클이, 바깥양반에게 "최선의 식사"에 필수품은 아닌 모양이다. 수제 라구소스에 페투치노를 버무린, 그리고 불맛을 낸 목살스테이크로, 좋아하며 냠냠 먹네.


나는 손을 씻고 가방을 챙긴다. 그리고 시계를 확인하고 문을 나선다. 가장 중요한 지금, 내 앞의 사람, 내 하는 일에, 또 다시 헌신키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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