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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보나라 이게 맞나

부부의 날 에디션

by 공존

몇일 전 또 나는 길고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는 길에 바깥양반에게 "오늘은 특식이다!"라고 먼저 떵떵 큰 소리를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파스타면이 없네?


파스타 면이 없어서 당황하는 나에게 바깥양반은 짜파게티나 해달라고 했고 그길로 나는 돼지고기 들들, 대파 썰어서 볶아 짜파게티를 또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오늘은 나는 또, 내일이 부부의 날이기도 해서, "오늘은 특식이다!"라고 떵떵 큰 소리를 쳤는데, 바깥양반은,


파스타를 해달라네?


이런 이런. 오늘은 파스타 말고, 가벼우면서도 헤비하며 코리안하면서도 이그조틱한 그런 맛난 요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다시금 계획은 수정된다. 파스타. 원래 하기로 했던, 까르보나라 파스타.

사실 어제도 다른 요리를 하려고 했는데, 늘 이런 식이다. 계란이 없었다. 하여 오늘은 계란까지 집 앞 채소 가게에서 새로 샀다. 당일 산 계란으로 하는 까르보나라라니, 나름 정성들인 음식같잖아. 집에 와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베이컨과 마늘을 넉넉히 먼저 볶았다. 돼지가 되겠는걸 싶지만, 오리지날 까르보나라 레시피라서 날계란 맛을 그나마 다스리려면 베이컨이 풍부해야할 것 같아서. 그런 핑계.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대로 면은 대강 먼저 삶아서 뒀다. 그리고 지글지글 베이컨과 마늘을 볶은 뒤 계란소스를 만든다. 계란소스라기보단 그냥 날계란을 두개 풀어놓고선 늘 그렇듯 면이 생각보다 많아서 계란을 하나 더 풀었다. 왜 늘 파스타면은 나도 모르게 많이 해버리는 걸까.

계란이 익어버리지 않게 팬에 면수와 함께 볶은 파스타면을 볼에 꺼냈다. 그리고 날계란 셋에 파마산 가루를 좀 올렸다. 참으로 쉬운 요리로구나. 너무 쉽고 간단한데 이런 정통 레시피보다는 크림을 넣은 소스가 우리나라에선 한때 까르보나라로 통했으니, 그만큼 날계란 파스타라는 게 쉽게 다가서긴 어려운 음식이란 거겠지. 날계란을 먹은지도 오래되었다. 어릴 때야 날계란에 간장 톡 올려 슥슥 비벼먹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그렇게 먹는 식사 자체가 좀 구차해졌다. 아니 정확히는 가족 보기에 민망하다. 나도 스스로 정성들여 밥을 차려먹고, 가족에게도 정성들인 밥을 차려주는 것이 알찬 하루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이라 어느정도까지 파스타면을 식혀야 할지 모른다. 일단 식탁 위에 던져두었던 계란판 위의 나머지 계란들을 정리한다. 아이를 가진 건 어쨌든 좋은 일이다. 아이를 낳고 바깥양반은 쉽게 쉽게 외식을 하던 습관에서 조금은 벗어나 하루 종일 집밥을 먹는 일이 익숙해졌다. 나는 좀 더 각종 식재료의 신선도에 민감해졌고 바깥양반을 위해 조금 더 부지런하게 음식을 차리게 되었다.


계란이 딱 그렇지. 전에는 계란 한판을 사면 후딱 후딱 먹어치우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도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방치하고 먹는 것만 먹곤했던 것. 그런데 바깥양반을 위해 이런 저런 걸 하다보니 계란도 생각보다 빨리 다 쓴다. 이번에 마침 까르보나라도 할겸, 그리고 원래 오늘 예정했던 특식도, 나중에 계란을 써서 만들기로.

내일은 부부의 날이다. 그래서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이럴 때 정통식 까르보나라라니 퍽 로맨틱한 기분이다. 물론 우리의 삶에 로맨틱은 무슨. 내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내내 바깥양반은 아이와의 사투다. 아이가 자기 범퍼침대를 벗어나겠다고 격렬한 활동성을 발휘하고 있다. 바깥양반은 아이가 범퍼침대에서 뛰쳐나올 때마다 웃픈 표정을 짓는다.


날계란 같은 삶이랄까. 날계란은 어쨌든 가열되지 않은, 본래의 생생한 정수와 같다. 알에서 깨고 나올 그 뭐더라 아프라삭스인가. 뭐 그런. 날계란으로 만든 까르보나라는 그래서, 나는 일부러 소금간도 그닥 하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제대로 그 날계란의 밍밍한 부드러움은 잘 느낄 수 있었다.


날계란의 비린 맛, 베이컨의 풍미, 양파의 부드러운 단맛. 까르보나라, 이거 맞나. 음 이게 맞다면, 이 삶도, 이게 맞는 거겠지. 바쁘고 거친, 자칫 버무려지기 전에 익어버릴 수도 있는 이 날계란 같은. 그런 삶을 석석 비벼먹는 게 하루 하루 살아가는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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