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에서 안해먹지?
두둥 탁
깐녹두를 샀다. 국산 녹두는 퍽 비싸다. 녹두전을 집에서 그리 잘 안해먹는 첫번째 이유는 비싸고, 비싼 주제에 구매를 한 뒤에도 손이 많이 가서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깐 녹두를 사서 망정이지 안 깐녹두라면 불린 다음에 손으로 박박 문대가며 껍질부터 까서 멧돌에 갈아야 한다는 것이로구나. 그럼 그렇게 하면, 더 맛이 있는가? 하면,
또 그게 더 맛있으면 다들 녹두전 먹겠지. 빈대떡은 빈대떡, 부침개는 부침개. 아무래도 녹두전이든 빈대떡이든 별미로 분류된다. 특유의 그 아린맛과 아무래도 눅눅하게 구워지기 쉬운 음식일 터이다. 부침개란 자고로, 바싹 맛깔나게 구워진 그 자글자글한 크리스피함을 즐기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야.
어쨌든 나는 고사리를 볶는다. 냉동실에 꽝꽝 얼려져 있던 고사리. 뜨거운 물에 해동해서 참기름과 함께 중불에 소금과 함께 볶아 물기를 날려낸다. 빈대떡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이 밑간이란 말이지. 김치도 헹궈서 썰고, 고사리도 볶아서 버무리고 하면 이제 녹두는 이 모든 걸 감싸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보면 참 쉬우면서도 재미난 요리다. 남는 나물을 함께 버무려서 구워내면 뚝딱인데, 밀가루는 자기 개성이 너무 약해서 속재료의 맛이 널을 뛴다고 해야 할까. 반면에 녹두는 절대로 속재료에 묻히지 않는다. 고사리, 숙주, 김치, 돼지고기 등등 풍성한 재료를 넣어도 녹두의 그 맛은 생생히 살아있다.
마침 장마도 다가오고 하니 녹두전을 만들어 보는 오늘의 저녁밥상이 딱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남은 녹두는 자알 씻어서 녹두밥을 만들어도 좋겠다. 우리 집안은 어릴 때 추석 명절이면 녹두 고명으로 송편을 빚었다. 집안 전통이니 달지도 짜지도 않은 그 녹두송편을, 고사리 손으로 집어 그 어린 아이가 앙앙 열심히 씹어 먹었다. 어쩌면 나에게 고소함이라는 것을, 아니, 순한 구수함을 처음 알려준 것이 이 녹두 아니었을가. 송편 속에 든 노오란 색깔의. 안타깝게도 우리 집안은 이제 송편을 빚지 않는다. 아이가 크면 그때즘 우리집은 빚어먹을 수 있을까.
냉동실에서 돼지 갈비 살을 꺼내서 해동하여, 쫑쫑 썰어서 볶는다. 삽겹살이 마트에서 100g에 2500원 정도 한다고 치면, 갈비살은 100g에 1700원 꼴이다. 뼈가 있는 걸 좀 떼내어도 쫄깃하고 맛깔진 여러가지 식감을 즐길 수 있지. 그러나 녹두전에는 영 꽝이다. 비계가 그리 있지 않은 편이라 차라리 돼지 다리 살만 못하다. 돼지 다리 살이 냉장고에 있었다면, 두툼한 비계로 마음껏 기름을 내놓고, 껍데기는 빈대떡에 넣었을 텐데. 그러나 이것도 이것대로 좋다. 애초에 뭐든지 손길 가는대로,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해먹는 게 집밥이다. 녹두라고 해서 대단히 어려울 것이 있지도 않다. 그냥, 마치 무엇이든 맛있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튀김처럼, 녹두전 역시 그 안에 뭐가 들어가도 마냥 맛있고 재밌다.
하여, 물을 빼낸 불린 녹두를 앞에 두고 찰칵. 고명은 단촐하다. 고사리 돼지고기 헹군 김치에, 찹쌀가루를 넉넉히 부려둔다. 마트에 갔다가 충동구매한 찹쌀가루를 이리 저리 활용하고 있는데 이번에 다 털어넣어버렸다. 그동안 찹쌀가루가 열일했지. 마트에 가면 조만간 사와야겠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녹두를 갈 시간. 어느집에나 하나는 있는 그 핸드 믹서기 윙윙 소란스럽게도 돌아간다. 이쯤 해서 아기가 깬다. 아빠는 침실에서 도망나와 분주하게 저녁을 차리고, 엄마도 침실에서 빠져나와 거실에서 일을 시작하니 곤히 잠들었던 아이도 으앙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기에게 와달란다. 덕분에 저녁 시간에 조금 쉬려던 바깥양반이 휴식시간을 빼았겼다. 이러언...하며, 녹두전을 촥, 뒤집는다.
오, 잘 뒤집어졌어.
그런 날도 있다. 부침개를 한, 서너장 부치다보면, 어떤 놈은 꼭 한장이 찢어지거나 접히거나 해서, 모처럼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 재미가 확 달아나버리는. 그런데 오늘은 녹두전을 아무리 뒤집어도 한번도 찢어지지도, 접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에, 애매하게 남은 반죽을 와다다 부어버리고 두툼하게 구운 놈이 이리 해도 챡, 저리 해도 챡, 하고 뒤집혀버리니, 이 아니 기쁜가.
콩알처럼 작게 썰린 고기가 쫄깃, 고사리는 야들야들 좋은 식감이면서도 이 모든 걸, 감싸안는 녹두의 부드럽고 구수한 맛. 돼지기름을 쓰지 않아서 칼로리의 압박, 다이어트의 죄책감도 덜하다. 이게 왜 살찌는 음식일까? 싶을 정도로. 하여튼, 오늘도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