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삶겨지는 사이에 감자를 샤샤샥.
"저녁 메뉴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무거나 해. 너무 배고파."
"들기름 막국수...할까."
"어 근데 빨리해야돼 이유식도 만들어되잖아 그냥 대충해."
이유식을 만들고 보니, 이유식을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앞뒤로 정리하는 게 문제다. 우선 이유식은 그대 그때 신선한 걸 사와야 한다. 그리고 나면 아이 식기 설거지를 따로 해야 한다.
그게 귀찮아...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 하루 평균 설거지 시간이 30분은 늘어난 기분이다. 게다가 나도 한번에 일주일치 씩 만드는 성격이 못되어서 많아야 3일치 하루에 만든다. 그러니 오늘같이...방과후수업을 하고, 7시가 넘어서 퇴근을 해서 동백이와 바깥양반을 마트로 데려가서, 장까지 보고 오니 저녁 8시 30분을 넘은 시간이 되고 나니, 바깥양반은 배고프다고 성화에 내 마음도 바쁘긴 하다. 할 게 많단 말이지 이유식에 설거지에.
그러니 간단한 저녁식사, 진짜로.
일단 집에 오자마자 옷을 대강 갈아입고 손을 닦고 냄비에 물을 올린 다음 냉장고에서 감자를 꺼낸다. 감자값도 뭔지 모르게 폭등을 했다. 그런데 또 감자도 은근, 한번에 많이 사두기 어려운 식재료다. 지난주에 주먹만한 큰놈으로 여섯알을 샀는데 거의 6천원이니 감자 한 알에 천원 가까이 되는 세상이다. 이리저리 계절이나 정세나 안정되고 나면 좀 저렴해지거나 하겠지 감자도.
감자 한 알을 국수가 삶겨지는 동안에 갈아내는 것은 그리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다. 빠르게 샤샤샤샥 갈아내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데, 감자전을 제대로 하려면 덜어내고 남은 감자에 물을 좀 부어준 뒤 30분 쯤 내버려두면 좋다. 그렇게 하면 가라앉은 녹말만 남기고 물을 버려서, 그 녹말을 제대로 쓸 수 있다. 그럼 다른 첨가물 하나 없이 순수감자전을 만들 수 있다. 이게 이미 쫀득하지.
그러나 오늘은 속성으로 15분 안에 만드는 게 목표다. 감자전분, 섞는다. 그리고 애초에 감자전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같이 산 간 돼지고기 약간. 붓는다. 준비 땡.
물이 끓고, 국수를 넣어서 건져내기 전에 감자전이 부쳐지기 시작한다. 두툼~하고 넓적한 감자전. 돼지고기가 들어간 감자전. 이게 오늘의 저녁식사다. 여기까지가 10분 정도 걸린 시점이다. 내 목표는 15분 안에 두개를 모두 마치는 것이다. 마트에서 산 메밀국수가 제법 제 몫을 하고 있다. 적당히 면이 삶아진 다음 헹궈내고, 다시 씻어내고, 그 다음 면을 찬 물에 냉각을 시킨다. 공산품이어도 순메밀면에 가깝다. 쫄깃하게 먹으려면 면이 되도록 차갑게 식어져야 한다.
그 사이에 감자전도 착착 뒤집어준다. 항상 이 첫번째 부침개 플립은 요리인을 설레이게 하는 문제다. 잘 뒤집어야 부침개가 망가지지 않고, 그리고 밑면이 타거나 맛없게 익혀지지 않아야...오. 성공이다. 만족스럽게 밑면이 구워져서 앞으로 얼굴을 내민다.
이제 면을 마지막으로 헹궈서 물기가 빠지도록 채반에 받치고, 15분 간단 저녁식사의 마지막 단계다. 들기름 막국수 간을 한다. 먼저 동치미 반국자씩. 이번이 세번째 들기름막국수인데, 동치미 국물을 섞는 건 처음 해보는 시도다. 그런데 내 계산으로는, 퍽 어울릴 것이다. 우선 작년 김장 때 엄마가 해주신 동치미가 김치냉장고에서 겨울을 잘 나서 시지 않고 짭짤하게 잘 익어있다. 나는 이틀 전에 이 동치미를 내서 썰었다. 전혀 시지 않은 상태라서 짧짤하니 감칠만을 돋워주기 딱이다. 여기에 들기름은 두숟갈. 들기름 막국수에 들기름 아끼면 못쓴다. 그리고 양조간장 한스푼,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깨가루 한 티스푼 정도. 끝.
아차차. 오늘 같이 산 김자반도다.
흐음. 15분은 넘긴듯하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진, 동치미를 덜어내고 앞뒤로 감자전을 노릇하게 구워 익히는 데에 시간이 5분쯤 더 추가되었다. 나는 바깥양반을 불러 상에 앉히고, 바깥양반은 아이를 범보의자에 앉히고, 오늘도 하루 수고가 많았다. 열심히 살았다 오늘도. 아룸다운 봄날의 하룻밤이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