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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15. 2023

타인과의 공존은 관심도 여력도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17년째 공존이라는 필명을 여기저기서 쓰는 사람

- 닉네임을 공존으로 쓰시는 분 맞나요? 되게 말을 싸가지 없게 하시네요.

- 타인과의 공존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깐깐한 글쟁이와 찌질한 씹덕의 공존이죠. 지금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어 보여서요.


 20대의 나는 전도유망한 싸움닭이었다. 많은 독서량과 다양한 방면에의 흥미,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개화한 논리력을 가지고 여기 저기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비판의 칼날을 슥슥 휘두르고 다녔다. 대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는 싫은 말도 잘 못하는 예스맨 주제에 키보드워리어 짓을 제법 해서, 선배들도 틀린 말을 하면 들이받고, 패거리가 틀린 말을 하면 그 패거리를 들이받았다. 


 그런 모난 성질머리는 내 대학생활을 적잖게 상처입혔다.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밤마다 댓글 수백개를 주고받으며 싸움질을 벌여서 학교 안에 제법 이름이 팔렸다. 당연한듯 학생회에 들어갔다가 과 학생회장을 하게 되었는데, 단대 학생회장까지 시키려 하길래 누구도 생각 못한 쇼킹한 방법으로, 한총련 비판문을 A4 세장에 꽉꽉 눌러담아 터트리고 군대를 가버렸다. 남들 열심히 공부하고, 연애하고, 놀러 다닐 시절에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녔으니, 누가보아도 나는 타인과의 공존 따위엔 소질이 없는 인간으로 보는 것이 객관적으로 타당했다. 


그런 떠들썩한 소동 끝에 경찰 정보과에 포착되어 좌익분자로 분류, 강원도 양구의 GOP라는 최전방 격오지에 박혔다. 국가권력에 의해 포획되어 앞에도 산이요 뒤에도 산이요 양 옆에도 산인 해발 1180m 고지에 짱박혀있으니, 거기에서 1년 동안은 노예처럼 살다가 조금 군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좀 가질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1년 넘게 편지와 일기를 조금 쓰는 것 외에는 사색도, 알찬 독서도, 글쓰기도 못했으니 머리와 손이 굳지나 않았을까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하루에 6시간씩 중대장님을 따라다니며 순찰을 도는 동안 마음의 근육은 천천히 본래의 힘을 찾았다. 그리고 군대에서 압축적이고 밀도있는 독서를 했다. 결정적으로 좋은 문학작품의 의의를 그때 알게 되었는데, 몬테크리스토백작이나 그리스인 조르바 등 인생의 책을 만난 게 이때였다. 


 그리고, 문학의 세계에 푹 빠지면서 나는 그간 내가 강렬히 휩싸이고 있던 사회비판의 소양 뿐만 아니라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사랑 역시 내 소중한 일부임을 알게 되었다. 밤마다 댓글로 논쟁을 벌이던 사고뭉치가 일기장에 하루 하루 시를 적어갔다. 그러다가 병장이 되고 아무도 날 막을 자가 없어지자 하루에 여섯시간 씩 게임을 했다. GOP 내무실에 앉아서 깔깔이를 입고 게임을 하고 있던 나를, 방금 비상 상황 훈련이 끝나서 얼굴에 위장색을 칠하고 완전무장을 한 중대장이 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고 문을 닫고 나갔다. 만화가가 꿈이었고 게임과 일본 문화를 즐기는 오타쿠 역시 나의 일부였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다양한 성격, 성향, 특성이 혼재되어 있는 것을 깨닫고 글쟁이로서의 이름을 공존으로 정했다. 스물넷에서 스물 다섯살로 넘어가던 겨울, 온 산하가 눈으로 뒤덮인 GOP의 축선에서 "공존"이라는 이름을 떠올린 그 순간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어느새인가 공존은, 개인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미덕이 아니라 절대적 당위나 강박적 억압으로 우리 사회에 내던져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장은 부장대로 젊은 사람들과의 공존의 요구에 땀을 흘리고,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기성의 세계에 대한 이 강박적 공존의 소명에 전력 저항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나간다. 저항이야말로 가장 필사적인 공존의 길이란 걸, 나는 마음껏 내 앞의 그릇된 일에 문제제기를 하며 이미 잘 알게 되었다.


 사회문화와 제도권력은 복식과 경제구조로로, 언어관습으로, 사람들의 정체성으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공존"을 강요한다. 이제는 그러한 공존의 문제는, 너무나 익숙한 테제가 되어 아싸와 인싸라는 유희로 쓰이고 있다. 공존은 옳은 것을 넘어서 즐겁고 아름다운 것. 공존에 대한 거부는 찌질하고 못생긴 것이라는. 그런데다가 이제 생태와 환경이 시대정신으로 대두되어 있으니 공존이 즐겁고 아름다운 것을 넘어서 정의로우면서도 "쿨"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PC주의라는 공존의 한 방법론이 사색의 대상이 아니라 타인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자의식의 재료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20대였던 당시나 지금에나 타인과의 공존 따위는 관심도 없고 여력도 없이 살고 있다. 그것은 바깥 세계에 대한 부적응이 아니라, 그저 내 안의 복잡하고 다양한 특성들의 공존이 우선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편이란 역할로 인해, 교사라는 직업으로 인해, 교육학 연구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너무나 많은 나의 일부를 소실하며 살고 있는데, 어떻게 타인과의 공존 따위에 힘을 쓸까. 


 만일 공존이 어떤 당위로서 절대성을 지닌 문제라면, 존재의 인과적 법칙에 따라 나 자신의 내면을 조화롭게 공존시키며 다스릴 수 있게 된다면 타인과의 공존은 그 즉시 해결된다. 우리가 타인과의 공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나 안의 다양한 측면과 가능항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다른 "나"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과연 끝이 있을까? 나는 이 또한 우리가 평생을 추적해야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 자신의 공존의 문제보다 타인과의 공존의 문제에 쉽게 예속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사회와 문화, 교육제도가 개인의 자아를 왜소화하고 소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군대에서 당한 것과 같은 손발이 묶이고 머리가 표백되는 구조에서 우리 거의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 손발을 풀고, 머리의 표백을 거부한다면, 싸움닭이 되거나 GOP로 끌려가는 정도의 노고가 우리에게 딸려온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공존을 배우는 일반적 방식은, 나 자신의 존재를 소실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룰 자아도, 비판하고 투쟁할 초자아도 되도록 모나지 않게,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그저 말 잘 듣는 노동자만을 키우려는 현대 산업사회의 기본 전략이다. 


 공존이란 문제와 대면하고 17년. 나는 아직도 내 안의 다양한 가능항들을 내려놓지 못함에 따른 고단한 일을 시시각각 만난다. 그 대다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사서 하는 고생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비우는 그러한 방식의 공존은 지금까지 배워본 바가 없기에 앞으로도 따르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살아본 결과 그닥 별 일도 없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바깥에서의 공존의 억압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갖길 바랄뿐이다.

“My Better Half” by M. Hessels and D. Ducharme, Canadian Open Sand Sculpting Competitio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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