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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10. 2023

숙면에 대하여

어제도 다섯시간 똑 자고 새벽에 깨어버렸어

 타고 났다고 하기엔 뭐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푸욱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귀중하고도 남다른 특성이 있었다. 내가 이것을 스스로 "조금 이상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외갓집 식구들과 여름방학 때 어울려지낼 때였다.


 우리는 외갓집 여섯남매의 자녀들끼리 유난히도 돈독해서 어린 시절 나보다 열다섯살 위의 형님부터 다섯살 아래의 동생까지, 그러니까 최대 20세의 터울을 둔 열댓명의 이종사촌들이, 방학 때 2주일 정도 모여서 놀곤 했다. 외갓집의 할머니네는 차도에서 5분 정도 걸어들어가야 하는 야트막한 산중의 한옥이어서, 어릴 땐 툇마루 뒷문을 열면 고양이가 기어올라와서 놀고, 아궁이에선 내가 아침마다 불장난을 한다고 외할아버지 누우시는 자리를 뜨끈뜨끈 달구던 그런 집이었다. 할머니네에서 몇일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기쁘게 돌보시는 일이 조금 지칠 때쯤은, 몽산포에 텐트를 서너개 치고 사촌들이 열흘 정도 함께 자고, 수영하고, 라면과 카레로 밥을 해먹으며 놀았다.


 외갓집에 가서 놀던 모든 시간. 아침에 할아버지께서 개죽을 쑤며 나는 장작의 내음이 묻어나는 새 아침의 산 속 공기에서도, 쏴아 쏴아 밀물이 바로 우리 텐트 치는 모래언덕 아래까지 들이닥치는 바다의 아침에도, 나는, 단연코 혼자서 번쩍 눈을 떠 자리를 털고 일어나곤 했다. 스마트 폰도 혼자 놀 다른 무언가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던 나는 그럴때 거의 매일 혼자 산책을 했다. 작은 외갓집의 앞마당은 토끼와 닭, 크고 작은 개가 날 반겼고 몽산포의 아침엔, 그저 파도만 보고 걸어도 좋았다.


 왜 이다지도 나 혼자 깨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그것이 늘상 있는 일이었으니까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게임기라는 걸 접하고 나선 방학 때 혼자 일찍 깨어있는 일이 없어졌고, 중학생이 되고 나선 잠이란 건 당연히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긴 했다. 고등학생 때는- 삼당사락이라면서요. 그래서 고3때 등 대고 잔 게 세시간이긴 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니, 귀가 먹은 듯이 푹 자고 아침에 딱딱 눈이 떠지는 것이, 이제는 내가 그나마 이 삶을 버티어나가는 한가지 고귀한 능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어제 나는 밤 여덟시반에 잠들었다. 이틀간 학회지에 제출할 논문으로 잠을 서너시간씩 밖에 자지 못했고, 아이를 재우면서 그 작은별 자장가 소리에 나도 그만 잠든 것이다. 잠에서 깬 것은 새벽 한시 반. 아니 이틀 동안 못잤다면서요? 그러나 내 몸은, 그런 부족한 수면 따위엔 그리 관심이 없다. 다섯시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잠을 잤으니 눈은 떠지고, 그로부터 나는 스마트폰을 켬과 동시에 짧은 재가동 시간과 함께 정신의 풀가동 상태로 복귀한다.


 부족한 잠을 자지 못한다. 이럴 때 곤란한 것은, 새벽 1시 반에 잠에서 깬 나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일어나서 책을 펴도 되고 게임을 해도 되고 글을 써도 되지만, 당연히 잠이 부족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몸의 배신에 저항을 해보곤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은 오지 않고, 나는 스르륵 일어나 게임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보거나. 아 역시 책이 잠은 그나마 제일 잘 온다.


 또 하나 곤란한 것은 상위 0.001% 보다도 희소한 비율로 숙면을 취하는 나와는 정 반대로, 상위 10% 정도로 예민하고 잠귀가 밝으며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대단히 겁이 많고 예민한 성격이다. 자다가 내가 몸을 일으키면 반드시 깬다. 반대로 나는, 안쪽에서 자는 아내가 날 넘어가서 화장실을 서너번 가도 전혀 눈치 채는 일 없이 죽어서 자는데도 말이다.


 그런 아내의,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성향에 대해서는 애닲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타고난 성격도 있겠고, 성장 배경의 차이도 있겠지만, 아내는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악몽도 자주 꾸고 잠꼬대도 심하다. 조금 우리의 생활이 불우한 상황이었다면 아내의 이러한 악몽과 잠꼬대는 분명, 무시무시한 생활상의 어려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여 나는, 오늘 새벽 한시반에 깨어나서 막걸리와 맥주로, 어찌어찌 잠을 청해보려다가, 그만 대부2 영화를 틀어버리는 바람에 잠과는 멀어졌고, 대부2를 보니까 또 재밌잖아요? 그래서 집중해서 보다가, 그만, 해가 뜨자 아빠를 닮아서인지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엔 일찍 깨는...딸네미의 우렁찬 울부짖음에, 아침 6시 20분에, 육아를 시작했다.


 잠을 푹 자는 것은 분명 현대사회에서 대단한 장점이지만 나는 그로 인하여 여러 일들을 겪는다. 작년에 논문을 보시고 교수님은 "잠은 잤냐?"라고 내게 물으셨는데, 네...논문 작성이 지독히 늦었기에 원래도 적게 자는 잠을, 조금 더 줄였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고선 앵간하면 내가 두시간 텀으로 새벽에 아이를 보는 것도 주욱 할 수 있었다. 원래 20대때 아이를 낳아야 맞는 거라는데, 마흔살에도 그럭저럭 할만한 일이었다고 느끼는 것은, 잠을 푹 자고, 적게 자기 때문이겠지.


 부부간에는 닮는다는데 아내는 언제쯤 과연 숙면을 취할지. 우리의 딸네미는 과연, 지금의 수면 패턴을 잘 간직해서 아빠처럼 부디, 잠을 푹 잘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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