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픈카,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by 커피맥주

나는 하고 싶은 게 많고,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다. 신기한 물건이 나오면 써보고 싶고, 새로운 곳이 오픈되면 가보고 싶다. 그래서 여러 물건을 사보기도 하고,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낯선 장소 또는 사람을 대할 때의 어려움이 별로 없다. 대신에 그거를 지속하는 힘은 좀 약해서, 뭔가를 꾸준히 하는 걸 성공한 적이 별로 없다.

또, 나는 약간의 고소 공포증과 폐쇄 공포증이 있어서 닫힌 공간보다는 오픈된 공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로망은 작은 테이블이라도 놓을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고, 내 차도 천장이 뚫려 있는 썬루프가 있는 차거나 오픈카이기를 바래왔다.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다. 직장을 다니면서 계속 자동차로 나홀로 출퇴근을 해야했고, 나는 차에 대해서 소모품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좋은 차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나 혼자 몰고 다니니까,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패밀리카는 남편 차로 따로 있었기 때문에 늘 가성비 위주의 차를 선택했다. 미국 생활을 지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의 첫 번째 차는 남동생이 외제차로 바꾸면서 나에게 준 베르나, 지금의 엑센트와 같은 차였다. 하얀색으로 낡았지만 잘 굴러다니는 차였기 때문에 혼자서 차를 몰고 다니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 차가 낡아져서, 차를 바꿀 시점이 왔다. 막히는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으로서 가성비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둥글둥글한 디자인에 맞았던 프리우스를 사게 되었다. 당시에 4천만 원 정도로 나에게는 소모품에 쓰는 돈 치고는 비싼 차였지만, 오래 타리라 다짐하고 새 차로 뽑았다. 하이브리드 차였기 때문에 기름도 얼마 안 들고 정말 고장 한 번 나지 않은 훌륭한 차였다. 조금 아쉬운 거는 낡아서 프레임 사이가 헐거워져 덜컹덜컹 소리가 많이 난다는 점이었다. 또 올해 출장 등으로 일주일 정도 방치하면 배터리가 조금 맛이 간 듯 시동이 안 걸릴 때가 있었고, 와이퍼가 깨끗하게 닦이지 않아서 비가 오는 날이나 야간 운전을 할 때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차의 기능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아주 잘 다니는 차였고, 특히 뒷좌석을 접으면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짐을 나를 때 유용하게 사용했다. 16만km 가까이 탔고 15년 정도 탔던 것 같다. 20만km까지 타고 싶었고 더 탈 수도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아빠가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고, 내 인생도 언젠가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예전부터 타고 싶었던 오픈카를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오픈카가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가격적으로 가장 싼, 그리고 나 혼자 타도 되기 때문에 작은 차를 고르다 보니 미니(MINI) 오픈카를 선택했다. 투도어에 뚜껑이 열리는 차였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사지 않을, 비싸고 가성비 떨어지는 차 모델이였다. 그전까지 나 혼자 출퇴근하면서 타던 차는 항상 가성비 좋고 연비 잘 나오며 가족들의 짐도 많이 실을 수 있는 실용적인 차로 골랐어다. 그렇지만 이제는 폐쇄 공포증이 있는 나를 위해 뚜껑이 열리는 차, 짐도 많이 실을 수 없는 투도어 작은 차, 오직 나의 취향이 반영된 차를 이제서야 갖게 되었다.

내 출퇴근길이 올림픽 도로, 강변북로, 내부 순환도로 같은 고속도로 위주로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오픈카를 사는 게 가능했다. 만약 동네 골목을 지나다니거나 신호등이 많은 시내를 다녀야 했다면 뚜껑을 열고 다니기 어려웠을 텐데, 서울 시내의 고속도로 위주로 달리는 출퇴근길이어서 가능했다. 뚜껑을 열고 선글라스를 끼고 좋은 음악을 틀면서 달리면 내가 꽤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환상이 들기도 한다. 그 기분이 좋다.

뚜껑을 열고 다니는 날이 많지는 않다. 뚜껑을 열었을 때 생각보다 덥고 시끄러워서 음악을 듣거나 전화하는 것이 어려웠. 나는 출퇴근길에, 팟캐스트 같은 오디오를 많이 듣거나, 미뤄두었던 친구/가족과의 전화통화를 주로 하는데, 그런 말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또한 우리나라 날씨가 오픈카를 타고 다니기 좋은 날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여름 밤 늦게 퇴근할 때, 그리고 봄, 가을에 아침에 출근할 때 음악을 들으며 뚜껑을 열고 달리면 굉장히 시원하고 짧은 해방감이 느껴진다. 특히 5월, 10월, 봄가을에 9시 10시 넘어서 퇴근할 때 분위기 좋은 재즈 음악을 틀고 뚜껑을 열고 달리면 정말 너무너무 좋다. 머리가 많이 날리기 때문에 내 짧은 머리도 도움이 된다. 한여름에는 아침에 출근할 때 머리가 뜨겁지 않도록, 쓸 수 있는 모자가 필요하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턱으로 묶을 수 있는 모자여야 한다.

그럽게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예상에 없이 일찍 사게 된 오픈카였다. 그 해 여름에 그 차를 몰고 오래된 지인들과 만남에 갔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자리에서 내 오픈카를 본 친한 선배가 관심을 나타내더니, 그 해 가을에 제네시스 오픈카를 바로 샀다. 그 선배는 농담처럼 옆에 예쁜 여자 태우고 다니고 드라이브 하고 다니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 선배가 오픈카를 사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올해 여름 얼마전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다. 이렇게 나에게 오픈카는 연달아 슬픈 이야기가 얹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그 오픈카를 타고 아빠를 생각하며, 그 선배를 생각하며 인생의 유한함을 다시금 느낀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내 차에 어울리는 이름아닐까. 그 차를 탈 때마다 내가 좀 더 열심히 재밌게 살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친절함을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나에게 오픈카를 사게 해준 계기가 된 아빠, 내 오픈카를 보고 부러워서 자기도 오픈카를 구매한 선배, 그들을 생각하며 나의 죽음도 언제가 될지 모르니, 좀 더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가끔은 큰 짐을 실을 수 없거나 뒷자리에 누군가를 태우기가 불편해서 후회하기도 한다. 그리고 탈 때마다 가끔 걱정도 한다. 이 뚜껑이 열리는 패브릭이 언젠가 고장 나지 않을까, 수리비는 얼마나 들까, 금세 고장 날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런 미래에 대한 습관처럼 피어오르는 막연한 불안감, 걱정은 억지로라도 밀어두고 온전히 지금 이 순간 이 차를 타고 다니는 나에게 집중하면서 이 차를 안전하게 재밋게 누려보려 한다. 50대 여자 직장인이 혼자서 오픈카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희소성이 나의 취향이고,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나의 삶은 앞으로도 매 순간 그렇게 지극히 사적일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나의 취향을 존중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인생을 지극히 사적으로 채워 보리라 생각한다.

(메멘토) 모리야!! 앞으로 재밋게 여기저기 다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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