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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Oct 17. 2022

#7 바람의 시작에서 바람의 끝으로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호코에서 부는 건기의 바람은 엄청났다.


 한국에서 겨울에 부는 칼바람을 표현할 때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맹렬하다고 얘기하지만 미얀마 샨주 호코 고원에 부는 바람은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건조한 바람이어서 바람이 불 때면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 눈으로 바람이 들어가면 아주 가는 흙먼지가 딸려 들어가 눈 속을 걸어 다니는 듯 따갑고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며 아프다.


입안은 어석거리고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넘기면 머리카락 끝까지 손가락이 내려가지 않고 손가락이 걸쳐져서 억지로 쓸어내리면 머리카락이 다 부서져버렸다.

 

2013년 겨울 이상저온으로 핀우린은 어느 해 겨울보다도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마당에 세워둔 1톤 트럭에 직원들을 태우고 시내에 나가 그날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하고 농장으로 출발하다 보면 기온은 올라가고 입고 있던 점퍼 위로 햇볕은 따갑게 내리 꽂혔다.

기름이 많이 비싼 미얀마에서는 물건을 배달해주는 일이 한국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운반비를 따로 받는 경우가 허다했고 어제 산 부품이 하루 만에 고장 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한국에서 파는 중국산과 미얀마에서 판매되는 중국산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났다. AS는 불가능. 예초기나 컴프레서나 전구나 그 자리에서 시연을 해준다. 그러나 AS는 해주지 않는다. 농장에는 쓰다가 망가진 부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목장갑 하나 구할 수가 없고 흙을 퍼담는 삽도 없어서 무거운 미얀마 삽과 무쇠 칼로 잡초를 베었다.

건기의 나무들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살아 있었다. 직원들의 숙소 자리를 정하고 집터를 만들기 위해 나무와 풀을 제거했다. 풀들을 잡아당길 때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모랫바람은 입술을 갈라지게 했다.


 우리는 대나무로 얼기설기 임시로 집을 지었다. 손재주가 좋은 민찌가 대나무를 엮어서  바닥은 흙바닥이지만 비가 오지 않는 건기이니 바람을 피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안에 아침에 입고 간 옷가지를 걸고 도시락을 걸어놓고 일을 했다.

엉성해도 바람을 막아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는 멀리 파놓은 웅덩이에 가서 서로 망을 보며 볼일을 봤다. 여자들끼리 작은 볼일을 볼 때면 몰려가서 서로 등을 돌리고 볼일을 보는데 한 번은 나유가

사모님! 용니! 용니!

하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뱀이라도 나타났다는 것인 줄 알고

볼일도 다 보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용니? 용니가 뭐야? 뭔데???

나까지 소리를 지르니

여자 직원들이 까르르 웃으며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리며 토끼 귀 모양을 흉내 낸다.

아, 용니가 토끼야??

모두 까르르 웃으며 나는 또 하나를 알았다.


다만 모든 것이 느릴 뿐

바람만이 휩쓸고 가는 황량한 황무지에는 모래먼지와 마른 나뭇가지들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파고다.  바라보며 저기에 한번 가야지 저기에 한번 가봐야지 매일 생각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벽돌을 주문해도 벽돌은 오지 않는다.

모래를 주문해도 기다려야 한다.

일할 인부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여기서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

뭐가 자랄 수는 있을까.


 미래를 의심하면 자신도 의심스럽고 주변 사람들도 의심스럽고 길가에 핀 예쁜 꽃들까지도 미워진다.

요한은 소리를 지르면서도 계획을 관철시켜 나가려고 했다.

벽돌이 오면 오는 대로 나무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을 피하며 집을 지었다.

마침내 방이 완성되고 문짝을 달아야 하는데 앙앙은 너무 좋아하며 그 방에 들어가 살겠다고 한다. 문이 없는데 어떻게 사냐고 하니 괜찮다고 하며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앙앙과 나유는 칠흑같이 어두운 농장에서 문도 없이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우물이 있고 발전기가 있고 밥 해먹을 화덕이 있으니 아무 문제없는 것이라고 한다.


냄비라도 장만하라고 3만짯을 주었더니 냄비와 숟가락을 사고 중국산 모포를 사고 대야를 사고 도시락을 샀다. 그리고 핑크빛 모기장을 사서 도배도 안 한 방안에 걸어두었다.

내가 갈 때마다 나유는 나보고 이불에 누워 쉬라고 한다. 핑크빛 모기장을 내리고 밤이면 둘이 행복한 꿈을 꿀 것을 생각하니 흐뭇해진다.



 미얀마는 농업국가이고 우리가 그랬듯이 농촌에서 젊은이들이 할 일이 없다. 땅이 있어도 우물을 파서 물을 내고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우기 시즌에  의지해 농사를 지어 농작물을 팔고 그것으로 일 년을 먹고살아야 한다. 학교의 학비는 저렴하지만 공책을 사고 교복을 맞추고 교재를 사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농촌의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다 중도에 그만둔다.


 쉬는 날이면 핀우린 숙소에서 느긋하게 일어나 나인스타에 가서 밀크티와 빵을 주문하면 한국 사람인 내가 신기한지 예닐곱 살 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꼬매애들이 깨진 커피잔에 촬촬 넘치도록 밀크티를 담아 찰랑거리며 탁자에 가져다준다. 커다란 눈동자에 웃음을 담고 손톱 밑이 까만 작은 손을 내밀어 찻잔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떡진 곱슬머리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슬픔이 몰려왔다.


 나인스타에서 밀크티를 마실 때면 마음이 불편하고 머리가 아팠다.

과거로 되돌아온 듯 다시 어린 시절의 가난과 마음속에서 뜨겁게 퍼져나가던 부끄럼의 응어리들이 다시 살아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다시는 수면 위로 올라올 거 같지 않던 슬픔이 고개를 내밀고 깊은 바다 위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농장의 직원들을 볼 때도 안쓰럽긴 마찬가지였다. 요한과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했다. 버튼을 잘못 만져서 되돌아가고 싶지 않던 과거로 떨어져 버린 것처럼 순간순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현재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에 사로잡혔다.


어린 시절의 한국이랑 다를 게 없는 이곳으로 다시 인생이 시작될 거 같은 불안.



직원들은 열심히 땅을 팠다. 포크레인도 구할 수 없는 오지에서 우리는 땅을 파고 벽돌을 날랐다. 비질을 하고 못을 박고 나무판자를 날랐다. 시멘트를 개고 납작한 냄비에 퍼서 벽돌이 붙도록 날라다 주었다.


하루 이틀 사흘 고된 겨울이었다. 몇몇은 그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


 크리스마스 파티와 상여금을 받고 돌아오지 않던 직원들을 욕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직원들에게는 어려운 추위였고 잡초를 뽑고 커피를 따는 일과는 다른 일이므로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일 잘하는 직원이 아프다고 해서 병문안을 갔다.

니니.


 커피농장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커피농장 안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커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트랙터나 발전기 같은 기계도 아주 능숙하게 다루고 고칠 줄 아는 능력자였다.

커피농장에서 일하는 부모는 니니에게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니니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월급을 타는 날 아침이면 장부에 사인을 하게 했는데 니니는 글을 몰라 웨웨가 대신 사인을 해주곤 했다. 그리고 일찍 웨웨라는 이쁜 처자와 짝을 지어 주었다.


 웨웨는 인물이 아주 훌륭하고 키가 커서 미인이라고 할 만큼 예뻤는데 웨웨 역시 어릴 때부터 일을 해서 웨웨의 손은 크고 억세며 남자의 손 같았다.

홍콩배우처럼 예쁜 웨웨는 어린 시절부터 일을 해서 일머리를 잘 알고 억척스러웠는데 웨웨 눈에는 한국에서 온 우리가 아주 만만하고 물렁한 사람들처럼 보였던 거 같다.


 니니가 아픈 날이면 웨웨는 니니의 병간호를 해 준다며 같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과일을 사서 니니가 일하는 커피농장에 가보니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천정이 뚫린 집에서 니니는 중국산 모포를 덮고 누워있었고 웨웨는 없었다. 구멍 뚫린 천정을 보며 생각했다. 그 많은 비가 쏟아지면 어찌할꼬.

 

 웨웨는 어디에 갔냐고 하니 웨웨는 다른 농장에 일을 하러 갔다고 한다.

웨웨는 니니가 아플 때마다 병간호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일을 하러 다녔던 거다.


말랑한 한국 사장이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이란 걸 주니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이 줄지를 않으니 이렇게 좋을 데가 있나 하면서 품을 팔고 다녔던 것이다.

똑똑한 웨웨.

웨웨 덕분에 나도 똑똑해졌다.

그래도 니니는 병문안을 온 나를 위해 머리맡 선반 위에서 꿀을 땄다고 가져가라고 한다.

고마워 니니.

잘 먹을게.

어서 나아.


그것이 니니와 우리들의 마지막이었다.

몇 년이 지나서 핀우린 시내를 지나가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는 니니와 눈이 마주쳤다.

니니는 잠시 웃어 보이며 아는 체를 했다.

지금은 아이 아버지가 돼 있을까. 니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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