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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Oct 10. 2022

#6 정전의 저녁, 모기들의 성찬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농장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커피농장을 시작한 2013년보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핀우린에서 호코까지 가는 외길에 전봇대가 쭉 나타났다가 어느 지점에서 사라져 버린다.


출퇴근길에 지나다보면 언제쯤 전봇대를 세워줄까 궁금해하다가 커피가 재배되는 지역의 특성상 오지가 많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일은 흔하지 않겠느냐 위로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날을 기다려본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농장에서는 인터넷이 빵빵하게 터진다.


애가 타는 심정을 하느님이 보우하사 도와주시지 않고서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하느님의 공으로 돌리고 싶다. 아니면 농장에서 아침마다 저녁마다 신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직원들의 기도 덕분일지도.


딱 우리 농장을 마지막 경계로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그런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외국에 커피를 심어놓고 상주하지 않으면서도 커피농장의 컨디션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때문에 가능한 일.


한국의 사장에게 미얀마 현지 직원들이 매일 사진을 전송하고 리포트를 하고 농장의 이벤트에 대해 수시로 체크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미얀마에서 커피를 안전하게 재배할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니 매일매일 감사할 따름이다.


드넓은 농장에 말뚝을 세우고 정해진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매일 변화를 살피고 온도와 습도 조도를 체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일은 모두 인터넷 강국 한국의 교육 때문이다.


처음 그 시스템을 도입할 때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직원들이 요한을 삥 둘러서서 구경했다.

아두이노.

설명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그걸 받아들이고 인지하고 적응시키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한국 사무실이나 집에서 인터넷으로 직원들과 통화하고 문자로 이야기하고 다시 통화하고 다시 문자하고 못 알아들으면 소리 질렀다가 다시 달랬다가 이러다 누구 하나 쓰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애를 먹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한 번씩 나는 요한에게 야단을 맞는다. 요한은 오랫동안 광고회사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고 지금 나이에도 컴퓨터를 제마음대로 사용하고 보다 제 마음에 맞게 편리를 위해 연구한다.


겨우 문서를 작성하고 메일을 보내고 뉴스를 검색하고 쇼핑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했는데 요한이 나를 쳐다볼 때  얼마나 속이 터질지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남편이 아닌가.

요한과 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난 영원히 부하직원이다. 요한의 능력만큼  난 절대 할 수 없으므로 그건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진리다. 그리고 집에서 애들 키우다가 회사일에 관여한 나는 이미 노화에 접어들어 안 보이고 기억력은 깜깜해졌으니 일할 때 욕먹는 거는 그냥 매일 먹는 밥 같은 느낌..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간신히 학습을 받은 덕에 요만큼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쩌면 내 자신이 30여 년 동안 매진한  학습에 대한 열의와 이해도가 매우 떨어진다는 것일 게다. 요한은 나머지 수업을 해야 하는 나를 억지로 끌고 그나마 낙오하지 않는  학생으로 졸업을 하도록 만들어준 훌륭한 선생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요한의 성질머리는 못됐다.


미얀마의 컴퓨터 보급률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컴퓨터를 볼 수 있는 건 은행이나 관공서 정도이지 학교에도 컴퓨터 한 대가 없어서 지난번에 마을 학교를 갔더니 프린터기가 없는 학교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손바닥만 한 복사기에 교재를 엎어놓고 복사를 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쏟아져 나오는 시험지를 보고 있으니 갑갑했다.


핀우린의 골프장 근처 고급식당에 가면 외제차를 세워놓고 양주를 마시거나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치렁치렁 걸고  기름진 요리를 게걸스럽게 먹는 부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이 입은 론지는 금박이 입혀져 있고 광이 난다. 그들의 집은 대리석으로 번쩍거리고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다. 호코마을 중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 다 쓰러져가는 2층 대나무집에서 흙바닥이 보이는 구멍 난 장판 위에 아기를 눕혀놓고 살았다.


석유도 나고 가스도 나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미얀마의 대다수 국민들이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아가는 이 부조리와 불평등을 마주 할 때마다 화가 났다. 부자들의 주머니는 미어터지고 국민들의 주머니는 늘 비어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물며 우리 농장의 직원들은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니 컴퓨터를 사용했을 리 만무한데 한국 사장의 인터넷 보고가  처음엔 어려웠을 테지만 기계치인 나와는 달랐다. 휴대폰을 사용하는 젊은 세대는 금방 3년여 만에 완성했다.


나의 30년과는 천지차이이다.


모태 기계치인 나와 다르게 미얀마 직원들은 평균 연령이 20대이고 중국제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고 문자를 보내고 소통을 해 왔기 때문에 습득이 아주 빨랐다. 하지만 처음 시도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많고 의욕을 보이지 않았고  별다른 불편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생활을 개선하려고 하질 않았다.


왜 굳이 힘들게 표를 만들어서 작성해야 하고 왜 굳이 힘들게 파이프를 설치해서 물을 줘야 하는지 저항했다. 몸에 익은 대로 지내려고 하는 타성을 설득하는 시간이 우리에겐 가장 힘들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갈등을 이겨내고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이렇게 좋은 시스템에 대해 자랑을 하고 우리 미얀마의 정치인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농장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사무실은 정전이 잦다.

한 번은 만달레이에 볼일을 보고 핀우린 사무실로 올라오니 해가 져서 깜깜해졌다. 체리란 골목으로 들어왔는데 환하게 켜져 있어야 할 대문 등도 깜깜하고 마당도 깜깜하고 문 열린 사무실 안쪽도 새까매서 안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아침에 내가 나오고 나서 정전이 됐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정전이라니 뭔가 잘못돼 보였다.

차에서 내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 직원들이 앉아 있다.


정전된 거야?

네 , 아침에 정전됐는데 아직도 안 들어와요.

주변을 살펴봤다. 다른 집들은 환하게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봐봐! 정전이면 불이 다 안 들어와야지 우리 집만 안 들어오네.

그제서야 민찌가 말한다.

시장 전파사에 가서 말했는데 기술자가 아직 안 와요.

언제 말했는데?

아침에요.

아뿔싸, 안 오면 전화를 해서 오라고 재촉을 해야지

네.

전화번호 알아?

아니요. 몰라요. 갔다 오면 돼요.

아고야! 전화번호를 알아놔야지! 그래 빨리 갔다 와.


모기는 떼로 달려들고 느긋해도 너무 느긋한 직원들한테 화가 나기 시작한다.

어떻게 저렇게 느긋할 수가 있지?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에 미얀마에서는 재촉이 없는 편이다. 온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되고 기다리다 안 오면 말기도 한다. 너무 급한 한국과 미얀마를 섞어놓으면 딱 좋을 일이다. 뭐가 안 되면 소리부터 지르는 한국 사람의 모습이 미얀마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게다.


그래도 하루 종일 기다리는 거는 좀 아니지 않겠나, 친애하는 직원 여러분.

배고프다 그냥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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