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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Oct 26. 2022

#8 월급날 돗자리 깔고 아보카도

이른 아침에 농장으로 출근하는 길.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길에 나선다.

오토바이 한 대에 남성과 여성이 탄 것으로 보이지만 쌩하고 우리 차를 앞지를 때 보면 아빠와 뒤에 앉은 엄마 사이에 아이들 두 명이 앉아있는 경우도 흔하고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강보에 안고 가는 엄마들도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여성들은 오토바이 뒷안장에 앉을 때 다리를 벌리고 운전자의 허리를 팔로 안은 자세로 타는 것이 아니라 사뿐히 엉덩이를 걸치고 다리를 모으고 옆으로 앉아서 운전자를 붙잡지도 않는다. 볼 때마다 나는 그 여성들의 자세가 신기하고 균형감각이 대단하고 느꼈다. 그리고 나도 오토바이를 탈 때 그렇게 타보려고 시도해봤으나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물론 운전자의 허리를 안은 자세로 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사랑하는 젊은 연인들에게서나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뒷 좌석에 탄 사람의 손에는 스테인리스 도시락이 들려 있는데 배달음식이 흔치 않고 인건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높은 사정 때문에 점심식사를 우리처럼 바깥에 나와 외식으로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게에서도 은행에서도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펼쳐놓고 짬짬이 식사를 한다.


농장으로 일하러 오는 일꾼들의 도시락통은 2단이거나 3단 스테인리스 도시락이다.

농장을 개간할 때 아침에 출근해서는 바람과 먼지와 추위를 피해 대나무로 얼기설기 가림막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삽이며 공구 그리고 도시락과 갈아입을 옷과 모자를 보관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면 삼단 스텐 도시락을 꺼내와서 밥을 먹었다.


일꾼들의 스텐 도시락.


남자 일꾼들은 폴폴 날라다니는 찰기 없는 안남미 쌀밥 위에 돼지비계조림을 얹어서 수북한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조림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밥과 함께 베어 먹고 또 베어 먹는다.


땅을 파고 트랙터를 운전해야 하는데 장정들은 돼지비계조림 두어 개에 의지해 허기를 채운다.

우리도 예전에는 밥사발이 아주 크고 꾹꾹 눌러 담아 수북이 쌓은 밥을 남자들이 먹고는 했는데 고된 농사일을 해야 하니 밥을 많이 먹어야 힘이 났던 것과 유사한 풍경이다.


미얀마는 더운 나라이니 우리처럼 뜨끈한 밥을 선호하지 않고 식혀서 밥을 먹는다.

기름진 반찬 없이 돼지비계조림과 나물을 얹어 밥을 먹는 젊은 일꾼들을 보면 좀 마음이 걸린다.



어느 날은 변변한 운동화도 없이 조리만 신고 다니는 시골 출신 앙앙이 트랙터를 몰다 발을 다쳐서 내가 튼튼한 슬리퍼를 하나 사고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함께 간 앙앙의 아내인 나유가 밥을 먹지 않고 눈물을 글썽이는 게 아닌가. 왜 우냐고 물으니 앙앙이 발을 다쳐 오지 못하고 혼자 숙소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소리에 당연히 앙앙의 밥을 포장할 테인데 말도 못 하고 자기만 맛있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마음 아파하는 나유의 착한 마음씨가 우리 모두를 울렸다.


가난한 나라의 쌀값이란 미얀마나 어린 시절의 우리나라나 크게 차이가 없다. 지금은 라면이 쌀보다 비싸지만 어린 시절에는 쌀이 비싸서 쌀이 부족할 때는 라면을 사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미얀마도 쌀값이 비싸다. 농장 직원들도 월급을 받으면 쌀부터 사는데 먹고 남은 밥이 나와야 같이 사는 개들과 고양이도 먹을 텐데 잔반이 나오지 않으니 개들과 고양이는 삐쩍 말라 있고 서로 경쟁이 치열해서 오래 살지도 못하는 편이다.

개들과 고양이에게 극진해서 어려운 형편에도 늘 음식을 남겨서 개들과 고양이를 먹이는 마음이 안타까워서 깨진 쌀을 사서 짐승들을 먹이게 했다.


아침이면 일어나 장작을 피워 쌀을 씻어서 냄비에 물을 많이 붓고 저어가며 후루룩 끓여내서 물을 조금 내 버린 다음 뚜껑을 덮고 뜸을 들인다. 다된 밥은 넓은 그릇에 옮겨 담고 더운 김을 빼고 그 위에 반찬을 얹어서 손으로 먹거나 수저로 먹는다. 손으로 먹으려면 뜨거운 밥보다는 식은 밥이 나을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식은 밥에 가지나 모닝글로리, 호박, 박 이런 나물류를 얹어서 한술 뜨고 다시 일하러 나선다.

마을에는 채소가게가 있지만 도시나 시골이나 장날이 있어서 장이 선다.


핀우린에는 큰 시장이 있고 시장과 좀 떨어진 마을에는 새벽 일찍 장이 서기도 한다.


호코마을 우리 커피농장에는 부식을 오토바이 뒤 대바구니에 채워 담고 야채장수가 정기적으로 방문을 한다. 사는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고기도 잘라 몇 조각씩, 토마토도 몇 알씩, 생선도 몇 조각씩 비닐로 꽁꽁 묶어서 대바구니에 담아 먼길을 달려와 직원들에게 판다. 그리고 야채장수의 장부에는 외상값이 적혀있고 직원들은 월급을 타면 외상값을 갚고 그 날이 야채장수에게는 즐거운 날이다.


야채장수가 가져다준 고기랑 생선으로 저녁이면 우물가에서 몸을 씻고 해가 지기 전에 장작에 불을 지펴 밥을 끓인다. 뒷마당에서 끊어 온 채소로 국을 끓이고 농장 마당에는 밥 짓는 연기가 퍼져간다.


커피농장에 방문하는 야채장수의 오토바이.


월급날이면 시장에 가서 고기도 조금 넉넉하게 사고 계란도 몇 알 사고 파고다 갈 때 입을 론지 천도 끊어서 수선집에 가서 고무줄을 넣고 입고 벗기 편하게 통으로 치마를 만들기도 한다. 남자들은 숙소에 남아 밀린 밀린 프리미어 리그 축구 재방송을 보기도 하고 마당에 나와 맥주 한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시장에 나가 사온 과일도 먹어본다. 아보카도는 한 개에 2-3백 원 하면 좋은 것을 살 수 있다. 한국에서 아보카도가 너무 비싸서 한 번은 잔뜩 사 와서 파티오에 돗자리를 깔고 아보카도를 깔았다. 후숙을 해서 먹기 때문에 일부러 익은 것들로 골라와서 실컷 먹어보자고 했다.



아보카도를 먹는 방법이 한국과 많이 다른데 아보카도를 막 으깨서 엄청난 양의 설탕을 넣어서 아이스크림처럼 떠먹는다. 사실 나는 아보카도를 비롯한 열대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달기는 하나 시원한 맛이 부족해서 먹고 나도 갈증이 난다.

한국의 사과나 배 귤 감 포도 이런 과일이 내 입맛에는 더 잘 맞는다. 여럿이 모여 무슨 말인지는 모르나 깔깔거리며 퍼먹던 아보카도 간식 시간

발갛게 노을이 물들던 그 저녁 그 평화로움이 이따금 그립다

먼지 묻은 얼굴을 말갛게 씻고 삼삼오오 모여 시장 골목으로, 수선집 골목으로 몰려다니던 그녀들과의 추억이 이따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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