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 민 DAW MIN Nov 09. 2022

#11 서리 내린 커피나무 아래서 커피를 생각하다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2013 겨울 커피농장을 조성한  해의 겨울은 매서운 한파가 미얀마를 덮쳤다.


시설재배가 전무한 다른 농가들의 형편도 마찬가지겠지만 추위에 취약한 커피농장들을 긴장시켰다.

해마다 하듯이 옥수숫대를 엮어 어린 나무의 집을 마련해줬음에도 얼어 죽는 나무들이 속출했다.


10년씩 키운 나무들도 꽁꽁 얼어 꽃을 피우게 될지 우려스러워 보였다.


우리가 임대한 집은 핀우린에서 제법 고급주택이었지만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많은 창문과 곳곳에 뚫린 출입문과 시원한 타일 바닥은 을씨년스러움을 넘어 서글프고 의욕을 떨어뜨리며 우울함을 가져왔다.


사다 놓은 이불은 사라지고 궁여지책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중고의류를 새 옷이라고 우기며 파는 옷가게에서 이쁘장한 여주인에게 마지못해 패딩을 사서 직원들이랑 나눠 입고 잠을 잤다.


 해가 저무는 12 30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남편과 둘이 썰렁한 거실 탁자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45 샨술을 마시며 우리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말없이 잔을 비워냈다.


집에 두고  어린 아들과 통화하고 너무 고되게 살지 말라던 친정 엄마의 목소리가 귓전에 남아 한없이 가라앉는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우뽀우 변호사다.


난방이 되지 않는 썰렁한 레스토랑으로 초대를 받은 12월 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유쾌한 여성과 스머프를 닮은 그의 남편 도니니윈과 우나잉.

절에서 도네이션(기부) 행사에 참석한 후 미얀마 친구들과 함께

미얀마의 이름은 성이 없고 태어난 날과 요일에 따라 이름을 정하게 되는데 월요일은 호랑이, 화요일은 사자, 수요일 오전은 상아가 있는 코끼리, 오후는 상아가 없는 코끼리, 목요일은 쥐, 금요일은 기니피그, 토요일은 용, 일요일은 가루다(미얀마 신화 속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8 요일을 7 요일에  적용시키다 보니 수요일을 오전, 오후로 나누었다 한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요일을 상징하는 글자를 이름에 넣어 짓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가 있는 여성의 이름 앞에는 도를, 젊은 여성은 마, 젊은 남성은 코, 나이 든 남성은 우를 붙인다


그러니 부부의 이름은 니니 윈이고 나잉이다.


미얀마의 공무원인 두 사람은 우리 회사에서 여러 재정과 법률에 관해 도움을 받는 변호사의 이웃사촌이다.


 발령을 받은 곳에서 서로 가까이 살면서 가정과 직장일을 다 속속들이 의논하는 절친들이다.


핀우린에 발령받고 온 후에도 여전히 우정을 과시하며 변호사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었다.


나름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입김을 내며 마시는 위스키 한잔에  모처럼 오래된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12월 환하고 따뜻했다.


그들의 겨울 코트는 낡고 검소했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먼 데서 온 우리 부부의 취기 어린 푸념을 내내 경청해준 그들 부부에게 우리는 모처럼 집에 온 듯 편안하고 행복했다.


우나잉은 대화 도중에도 연신 점퍼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입술을 움직이며 뭔가를 읊조리는  같았다. 옆자리에 앉은 요한이 술기운을 빌려 우앙나잉의 안주머니를 뒤져 보니 휴대용 카운터기였다.


 저녁 8시면 기도시간이라서 우리와 만나는 시간에도 속으로 기도문을 외며 기도문 횟수를 세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불심이 놀라웠다.

우나잉과 도니니윈은  힘든 농사를 짓느냐, 한국에 가서 편히 살아라 말했다.


 부부는 한국과 미얀마의 역사가 비슷한 점이 많지 않냐면서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의 눈부신 발전처럼 미얀마에도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하며 웃는 부부의 표정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나는 농장을 오고 가며 차 안에서 쓴 시를 한 잔 술에 의지해 낭송했다.


입안 가득 고이는 흙먼지

건기의 붉은 땅 위로 오토바이는 달리고

굳은살 박인 발바닥으로 걸어가는 농부에게 묻는다.

그대의 집은 어디냐

나의 집은 또 어디냐

전깃줄 없는 전봇대

양초 하나 밝힌 그대의 집에

내가 쉬어가도 되겠느냐

누가 내게 무릎을 내어주겠느냐


궁상을 떠는 한국 아줌마가 안돼 보였던지 부부는 만날 때마다 물심양면 애를 써주었다.


어떤 대가도 없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해결사가 되어 주는 그 두 친구 덕에 우리가 미얀마에서 아직 건재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이란 제 자신도 알 수 없는 것일까.


순박하고 웃음이 많은 직원이 회사에 적지 않은 리스크를 주고 떠나갈 무렵,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두려웠던 그해 크리스마스


 우나잉과 도니니윈 그 부부는 분명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12 동안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마이 도터라고 소개하며 웃던 도니니윈이 그리운 밤이다.


그녀는 지금 폐에 병이 생겨 치료 중인데 요한 출장길에 좋아하는 김과 영양제를 보내니 또 잔뜩 선물을 챙겨 보냈다.


그녀가 어서 나아서 수퍽 노래방에서 칫로꼬드락을 함께 부를 날이 오길 기도한다.

호코농장가는 길 차 안에서 무지개를 만나다
작가의 이전글 #10 금광에서 돌아온 사나이 앙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