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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Nov 26. 2022

#15 지금 거기 눈 와요?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한국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영어 공부하고 한국어 공부했어요.

한국으로 가려면 돈이 많이 들었어요.

부모님이 돈을 많이 빌렸어요.

비행기표에 학원비에 수수료에

그런데 한국에 와서 TV 보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나와요.

IMF라고 발표했어요.

취직이 안됐어요.

회사에서 사람을  뽑아요.

집에 다시 가야 하나 매일 고민했어요.

그런데   없었어요.

한국에 오려고  많이 빌렸어요.

그거 갚으려면 일해야 해요.

그래서 떡볶이 2 원어치 사서 하루 종일 먹었어요.

아침 점심 저녁 나눠서

그렇게 6개월  못했어요.

매일 울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저민은 한국에 왔다.

스물셋

바다조개로 단추 만드는 일

철공소에서 무거운 철근을 나르는 일

 패널 집에서 샌드위치 패널을 자르고 나르는 일

가구공장에서 무거운 가구를 옮기고 드는 일

김포, 일산, 인천에서 파주

파주에서 서산

짐을 쌓고 풀고 그렇게 18년

스물셋 청년은 마흔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오랜 노동으로 척추는 휘었지만 그는 행복했다.

사랑하던 여인은 떠났지만 그는 많이 이루었다. 금의환향.

청춘을 한국에서 보내며 매달 꼬박꼬박 부모님께 송금을 해서 저민의 아버지는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차를 샀다. 아버지는  땅에서 쌀농사를 짓고  농사도 지었다. 여동생 공부도 시켰다.



호코농장에서 커피나무 컨디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어렸을 때 저민의 집은 너무 어려워서 밥만 해서 그 위에 조미료만 뿌려서 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 어릴 적 뜨거운 밥에 마가린을 넣고 비벼먹던 때처럼.


중성지방 덩어리로 우리의 식탁에서 퇴출된  오랜 마가린.

미얀마에는 아직도 마가린으로 음식을 조리한다. 큰 식당 주방에 가면 커다란 항아리에 굳힌 마가린이 담겨있다. 조리사들은 주걱으로 떠서 나물을 볶고 볶음밥을 만든다.


시장에서는 하얀 조미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한 되 두되 쌀 됫박의 쌀처럼 담아 판다.

하루 일당 4-5천 원으로 어떻게 고기를 사 먹고 육수를 내서 국수를 끓여먹을 수가 있을까.


미얀마는 너무 많은 자원이 있다.

그런데 미얀마는 한국보다 못살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나라이다.

여기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자원이 아닌 인프라를 의미한다.


석유, 천연가스,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6대 전략 광물 유연탄, 우라늄, 구리, 철, 니켈, 아연도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티크 목 생산국이면서 금, 은, 옥 등 천연광물이 풍부한 미얀마임에도 미얀마의 대다수 국민들은 높은 기름값에 쩔쩔매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 허다하며 양곤 같은 대도시에도 정전에 시달린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인접국가인 중국과 태국으로 수출하고 정작 국민들은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장작으로 불을 때어서 밥을  먹는다.


아침을 여는 푸른 새벽 집집마다  불 때는 연기로 동네엔 연기가 자욱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도 한 달 입금은 많아야 18만짯 정도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국수야 800-1000짯으로 먹을 수 있다지만 밥이 나오는 식사는 2500에서 3000짯은 줘야 먹을 수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사먹을 수 없으니 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다.

미래를 준비할 수가 없다.


한국도 살기 어려워서 독일에 가 광부가 되고 간호사가 됐다.

뜨거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삽질을 했다.

그새 다 잊었는가.


미얀마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은 그새 다 잊은 표정이다. 그들은 미얀마인을 함부로 대하고 반말을 찍찍거리고 수준이 낮다고 폄하한다.


저민이 일하던 한국 회사의 사장은 컨테이너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살게 하고 그 더운 컨테이너에 에어컨을 돌리면 전기세 명목으로 20만 원씩 월급에서 떼어 갔다고 한다.


저민은 그런 한국에서 18년을 일했다.

금의환향을 꿈꾸며 말이다.


 저민은 이따금씩 한국의 삼겹살과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서 시장에 가서 장을 봐서 집에서  번씩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김치를 만들었다고 사진을 보내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그 맛이 안 나요.


미얀마에서 열심히 일해도 일해봤자 가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가난한 조국이 너무 가슴 아팠다고 한다.


힘들어도 한국은 기회가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깨끗하고 맛있는 나라, 눈이 내리는 나라라고 좋아한다.


임재범의 고해를 너무나도 멋지게 부르는 잘생긴 남자.


저민이 한국에서 잠시 돌아와 차를 한 대 뽑아서 집으로 가는 길.


옆자리에는 어여쁘고 늘씬한 영 레이디가 앉아 있었다고 한다.


저민의  가는 길목에서 잡화점을 하고 있던 끼끼에는 저민을 보자마자 그만 낯선 남자에게 마음을 뺏겼다.

끼끼에는 저민의 집을 알아내고 저민의 여동생을 통해 열렬히 구애작전을 펼친다.


미얀마의 여성들은 굉장히 용감한 점이 있다.


 점잖으나 자기표현이 확실하고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고정관념이 별로 없는  같다. 사랑에 대해서도 아주 적극적이다.


저민은 끼끼에가 나이가 많아서 별로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하고 온 잘생긴 청년을 노리는 영레이디들이 많았으니 그의 자신감은 뿜뿜이었다.


하지만 물러설 끼끼에가 아니다.


끼끼에는 저민의 부모님께 찾아가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저민의 부모님은 끼끼에가 싫지 않았으나 당사자인 저민은 끼끼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끼끼에는 저민에게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가면 안 되겠느냐 애원했다. 그러나 저민은 냉정히 돌아섰다.

전화번호도 주지 않고.


그렇다고 물러날 끼끼에가 아니라는   뻬친묘  동굴에서 알아봤다.


낭초 가는 길에 있는 동굴에 놀러갔을 때 일이다.


천연동굴에서 깨끗한 물이 흘러나와 미얀마 사람들은 그 동굴에 부처님상을 모셔두고 기도를 하고 아는 사람들끼리 와서 동굴밖 작은 폭포에서 목욕을 하고 피크닉처럼 즐긴다.


동굴안은 물이 흘러내려서 매우 미끄럽고  한몸 중심잡기도 어려웠는데 끼끼에는 부처님상이 놓여있는 곳마다 무릎을 구부리고 절을 하며 기도를 올린다.


덕분에 끼끼에의 론지는 다 젖었다.


내가 무슨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느냐고 하니


저민, 호코, 커피  사장님, 사모님, 페어런츠


짧은 영어로  대답한다.


기약도 없이 한국으로 가버린 저민을 기다리며 그녀는 매일 밤낮으로 그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끼끼에는 미얀마 무비스타 같은 저민을 쟁취해냈으니 끼끼에의 기도는 확실하다.


그리고 저민은 어떤 영레이디보다 나이 든 끼끼에의 마음씨에 감동해서 결혼을 했다.


영레이디는 아직도 그 부부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지만 말이다.

이제 영레이디도 다 늙었을 텐데 한번 영레이디는 영원한  영레이디인가.



농장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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