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핀우린 베네딕토 수도원

#40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by 도 민 DAW MIN


말 하나 알아듣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커피농장을 시작했던 겨울, 난 풋내기 천주교인이었다.


2014년 5월에 세례를 받고 처음으로 가톨릭 기도서를 선물 받고 묵주기도며 식사기도며 여러 기도문들을 외우느라 정신없을 시기였다.


개신교 신자였던 내가 천주교인이 되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큰 아이 학교와 집을 오고 가면서 버스 차창 너머로 보아 온 갈곡리공소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해야 할까.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마을로 터전을 갑자기 바꾸게 된 40대 초반에 시골살이가 어떤 건지 몰랐기 때문에 그 시골에서 살 수 있었던 거 같다.


연둣빛 봄날이 지나면 무섭게 시커메지는 풀들이 그렇게 무서운 존재라는 것과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잎들이 떨어지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을 치우려면 눈 오는 날들이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도 몰라서,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어서 잘 견뎠다.


요한과 내가 치솟는 생두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현지에 생두를 사러 가고

덜컥 커피농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저지른 무모한 도전이었다.


고산지대의 겨울은 춥고 적막하고

석회가 낀 세숫대야물을 받아 머리를 감으면 뚝뚝 부러지는 머리카락을 대충 묶고선

흙먼지 날리는 건기의 농장을 개간하러 출퇴근을 했다.


노을이 지는 길 위에 서서 하느님을 불렀다. 몰라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 하느님을 불렀다

.

조선시대 때 천주교 박해를 피해 모여 살던 천주교인들이 깊은 산골 갈곡리에서 옹기를 구우며 숨어살 때도 그들은 배교하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호코 커피농장에서 퇴근하는 길은 꼭 파주 우리 마을과 흡사해서 그렇게 하느님을 불렀다.


10여 년이 지나서야 인야 마을 수도원에서 울었다.

무엇 때문인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미얀마 500년 천주교 역사에서 처음 세워진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 수도원.

이탈리아 몬떼 올리베또 대수도원을 모원으로 하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의 이연학 요나 신부님께서 2019년 핀우린으로 오셔서 수도원 부지를 마련하시고 개간에 , 건축에 그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미얀마에 몰아닥친 코로나와 쿠데타와 지진..


그럼에도 공동체를 이루고 수도원 건축, 현지인 수도자 양성과 공동체 자급자족을 위한 사업을 하고 계시고 어려운 미얀마인들과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수도원에서 올려다본 유난히 푸르렀던 하늘과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낮은 구름 아래 정갈한 꽃들과 나무들


자연스러운 붉은 벽돌과 어우러진 나무 창틀과 투명한 유리창, 피정을 온 여행자들과 수도자들의 쉼터로 충만한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무엇보다 아늑하고 작은 경당에서 나는 모처럼 평안했다.


지난 10여 년 미얀마에서 잘난 체하고 우겨대고 실망하고 죄절하면서 돌도 돌아 이제야 핀우린 시골 인야마을 수도원 작은 경당 안에서 참으로 오래 머물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내가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꼭 한번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