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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Oct 05. 2022

#4 망고나무 아래서 빨래를 널다.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안난미쌀에 반찬 몇 가지를 싸와 밥 위에 얹어 먹는 미얀마식 식사. 월급을 탄 다음날에는 시장에서 닭고기 두어 점 사다가 조림을 해서 가져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날에는 가지나 나물이 대부분이다. 고향집에 계신 부모님에게 돈을 부쳐드리고 통장에 저축도 하느라 어린 직원들은 나름 규모 있는 생활을 했다.


커피농장은 대부분 일당으로 페이를 지불하지만 우리는 월급으로 지불을 했다. 일당을 받아 찬거리 사고 필요한 생활용품이라도 사면 푼돈이 돼서 돈 모으기가 어려울 거 같아 생각한 일인데 그 결과는 처참했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출근을 하지 않고 다른 농장에 가서 품을 파는 사람, 남편이 아프다고 간호한다고 같이 쉬겠다는 사람, 볼일 보러 고향에 갔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

아침에 트럭에 탈 직원들의 숫자는 들쑥날쑥했다. 어린 직원들이 안타까워 밥 사 주고 옷 사주며 정든 시간들이 떠오르며 화가 나고 괘씸했다.


미얀마에서는 화로로 밥을 짓는다.


 크리스마스날 밤.

직원들은 외출하고 나와 요한은 추운 사무실에서 볶은 땅콩에 위스키를 한잔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회사 이야기로 흘러가게 됐고 큰소리를 내며 싸우게 됐다.


요한도 나도 지쳐 있었고 요한도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이 바보 같은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그건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정말 잘못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미 후회하고 있는데 옆에서 다시 그 소리를 하면 불뚝 화가 치솟아서 오히려 잘못이 없는 상대에게 화를 내게 된다. 머리 회전이 빠른 요한은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부정행위를 모를 리 없었으나 그걸 지금 드러내야 한다면 당장 일에 차질을 줄 것이 뻔했으므로 크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한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었고 나는 그녀를 해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밖으로 나왔지만 갈 곳은 없었다. 밤 9시면 문을 닫는 체리란의 도로는 깜깜하고 지나가는 오토바이도 몇 대 없었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가로등도 없는 밤거리를 걷자니 서러움이 몰려왔다. 되돌려야 하는가. 후회의 눈물이 흘러내리며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어린 두 아이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나의 형제들.


숙소가 있는 핀우린은 해발고도가 높아 일교차가 커 해가 지면 춥고 쓸쓸하다.


 쉬는 날이면 전화가 터지지 않는 체리란 숙소에서 밀린 빨래를 하고 마당에 있는 장대를 세워 빨랫줄을 고정하고 빨래를 널었다. 그리곤 망고나무 아래 앉아 보온병에 든 차를 따라마시면 빈말 하나 건네지 않는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에 온 처음 몇 주는 마치 마녀에게 저주를 받은 것처럼  IMF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의 형제들의 전화를 받지 않아서 전화가 터지지 않는 이곳이 지상낙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쉬는 날이면 망고나무 아래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놓고, 중국 트럭과 오토바이 경적 요란한 마당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 형제들이 생각났다.


길게 늘어진 빨랫줄에 나무막대를 빨래가 내려오지 않도록 고정해 놓으면 바람이 불어와 빨래는 다시 낮은 지점으로 몰려오고 다시 가서 겹쳐진 빨래를 넓게 펴서 고정하다 보면 어린 시절 쉬는 날 언니들과 빨래를 하고 좁은 방에 누워 장난을 치고 낄낄대던 날들이 떠올랐다.


“민아, 우리 이다음에도 돈 벌면 같이 모여 살자”

“응 언니, 언니랑 같은 동네 살 거야”

“그래, 민이 너는 글을 잘 쓰니까 꼭 작가가 돼”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창문 밖에서 빨랫줄에서 빨래는 넘실거렸다.

망고나무 아래 어린 시절의 형제들의 모습이 보였다.

카톡으로 늘 몸조심하라는 말, 잘 되길 기도한다는 말, 외면하고 싶었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아무도 나의 안부를 묻지 않는 이방에서 피해를 끼치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직원을 바라보면서 늘 나에게 미안하다 말하던 나의 형제들은 왜 떠오르는 것일까?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 그녀는 요한과 내가 한국에 있을 때에도 너무도 신속하게 업무지시를 잘 따르고 지시한 것보다 더 나아가 필요한 일을 찾아 주어서 요한은 그녀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매우 뛰어나서 전화로 들으면 한국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몇 번의 의심을 갖고 요한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요한은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 날 숙소에 필요한 벽돌이 들어오고 벽돌 영수증을 그녀가 직접 작성하는 걸 맞닥뜨린 요한의 인내심도 한계를 드러내고 폭발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세 번씩이나 변경하고 요한과 나는 다시 회사를 바로잡아야 했다.


망고나무 아래 널어놓은 빨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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