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 밝은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항상 잘 웃는 아이였고 성인이 된 지금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멋진 매력 요소는 예쁜 웃음과 밝은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했고 별다른 굴곡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평온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아마 그래서 내가 잘 웃고 밝은 분위기를 지닌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지인들은 항상 나를 보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고 나 스스로도 항상 감사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나의 이러한 성향이 좋은 결과를 항상 초래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다가왔던 이성들은 나의 밝고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사랑스러운 모습에 큰 매력을 느꼈었다.
하지만 나의 바로 전 연인은 나의 이러한 성향을 악용했다.
그는 항상 사랑받기를 원했다.
그와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항상 사랑을 받기보단 사랑을 주어야 했다.
사랑은 원래 주는 거라 생각하던 사람인 나는 그의 태도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사랑을 하면 그만큼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고 상대의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 게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는 일방적 희생이 요구되었다.
그는 나에게 사랑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아파하고 상처 입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아온 사람이니 그만큼 그에게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도 힘들었을 것이다.
어떠한 관계에 있어서든 사랑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은 그만큼 상대의 사랑에 목말라 하고 황폐화되기 마련이니까...
사회적으로는 너무나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사랑을 주는 것에 대한 서투름이 있었고, 그는 자기가 부족한 만큼 사랑 받기를 원했다.
나는 그를 항상 기다리고, 이해하고 용서해야 했다. 그게 사랑을 주는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목 하에...
언제 어디서든 잘 웃고 항상 밝은 나는 그와의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부턴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많아졌다.
나의 밝은 모습과 미소에 반했던 그의 앞에만 서면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밝은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
연애는 둘이서 만들어가는 것인데,
한 명이 점차 시들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그의 태도에 화가 난 나는 이별을 고하곤 했다.
하지만 나만큼 사랑이 많은 사람을 또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그는 매번 나를 붙잡았다.
결국 그런 관계 속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나는 용기를 내어 그를 떠났고
그 헤어짐 뒤로 지금까지 아무도 만나고 있지 않다.
그와의 헤어짐 후에 나는 주변인들이 단번에 알아차릴 만큼 다시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있다.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상투적인 문구에 격하게 공감을 하며...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눈부신 나의 인연을 기대하며..
그런데 오늘 만난 절친한 친구가 진심으로 날 걱정하며 “이제 너도 연애 좀 해야지. 맨날 애들이랑 학교만 생각하지 말고 너도 연애 좀 해. 이러다 좋은 시절 다간다? 혹시 아직도 전 연애의 상처가 남아있어서 연애를 안 하는 거니?” 라며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 나는 그 친구를 이해한다. 그 친구는 내가 진심으로 걱정되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친구의 물음을 대충 넘기며 대화의 흐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난 더 이상 전 연애의 상처로 아파하지 않는다. 물론 그 상처가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난 더 성숙해졌고 그만큼 누군가를 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다만, 조금 겁이 날 뿐이다.
나의 사랑을 당연시 여기지 않는,
사랑을 주는 것을 어색해 하지 않는
그런 멋진 사람을 만나면
아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여전히 사랑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