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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Dec 08. 2020

등산의 추억

현재를 살게 하는 등산의 힘

처음으로 등산을 해본 적이 있다.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랑 썸을 타는 중인데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자기도 등산을 좋아한다고 했다."라며 나에게 같이 가달라고 했다. 내 친구는 한 번도 등산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남자의 친구들도 같이 온다는 말에 ‘등산의 등’자도 몰랐던 나는 ’혹여나 인연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바로 수락을 했었다.


등산을 하기로 한 어느 여름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곱게 아이라인을 그리며 열심히 화장을 했고, 스포티한 분위기의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나섰다. 누가 봐도 등산이 아닌 한강공원에 자전거를 타러 가는 복장이었다. 아침부터 만난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입구를 올라가는데 곱게 화장한 얼굴 위로 땀이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내가 할만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직장을 옮긴 지 얼마 안 돼서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된다."라는 어설픈 핑계를 대며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등산의 첫 기억은 민망하면서 찝찝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정신력이 좀 더 강해졌다고 느껴서인지 등산에 도전하고 싶었다. 이번엔 남자 친구와 등산을 약속하고 전 날까지도 잠을 설쳤다. 정상까지 못 갈 것 같은 불안함, 나를 ‘나약하고 끈기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쩌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에 부담이 되었다.


등산을 약속한 당일이 되었고, 등산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복장부터 장비까지 당신의 소품들로 나를 꾸며주었다. 장비를 갖춰 입으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렇게 첫 도봉산 등산이 시작되었다. 가볍게 입구를 지나 생각보다 성큼성큼 잘 올라갔다. 대신 이번엔 위를 보거나 밑을 쳐다보지 않고 지금 올라가고 있는 계단에만 집중하며 한 계단씩 올라가 보았다. 그렇게 하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현재에 집중이 되었다. 정상까지 가야 한다는 강박 없이 오직 밟고 있는 계단과 들려오는 새소리에 집중하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1km 정도를 앞두고 있었다. 그때부터 체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는 고릴라처럼 돌길을 네 발로 기어가고 있었고 속으로 온갖 욕을 내뱉으며 힘을 쥐어짜서 결국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도착해 거대한 바위들 가운데로 수많은 아파트들을 내려다보는데 왠지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힘듦이 느껴지지 않고, 나 자신이 뿌듯하고 대견스러웠다. 등산은 정상에 올라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건 옆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정상까지 간다는 강박 없이 현재에 집중하며 한 걸음씩 오르는 것이었다.


하산할 땐 등산할 때 보다 비교적 쉽게 느껴졌지만 오히려 더 집중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미끄러지거나 넘어져서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엄홍길의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에서는 “산을 오르는 것은 삶을 배워가는 과정이며, 하산할 때가 더 중요하다. 잘 내려와야 다시 오를 수 있고, 성공에 취해 자만해서도 안 되며, 결과가 아닌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생각이 복잡할 때나 지금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을 때 나는 등산을 추천한다. 내가 생각하는 등산의 매력은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르는 순간만큼은 미래에 대한 걱정, 과거에 대한 미련을 생각하지 않아 머릿속이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든다. 등산은 또한 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오늘 하루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뤄 냈을 때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자신감 말이다. 이어폰 대신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느끼고, 산을 오르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마음과 몸이 한결 가벼워져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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