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시노라 - 계동
서울 종로구 계동길 82 카페 시노라 북촌점
키워드: LP 청음, 핸드 드립 전문, 프렌치토스트
카페 시노라 북촌점은 안국에 위치한 작은 카페다. 채도 낮은 빨간색 둥근 처양막은 가게의 상징과도 같아서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체리빛 천막을 상기할 것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목재를 활용해 아늑하고 벽을 장식하는 빈티지풍의 인테리어 소품은 어느 시대의 것인지 가늠할 수 없으나 감각적이다. 어느 하나 과하지 않은 느낌이라 가게 곳곳에 눈길이 시간을 들여 머문다.
내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던 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5월의 일이었다. 북촌 일대는 대개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지만 이날만큼은 궂은 날씨 탓에 한산했다. 덕분에 내점 한 손님은 가게에 우리뿐이었고 차분한 환경 속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북촌은 어쩐지 모르게 비 내리는 날에 오기 좋은 동네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공기가 감싸는 처연함이 동네와 잘 어울린다고 당시의 나는 기록해 두었다.
음료를 제조하는 바의 안쪽 공간은 가게에서 가장 특색 있는 공간이다. 이곳을 보고 있으면 마치 선장의 조타실 안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감상을 자아낸다. 실제로 조타기 모형의 소품이 매달려 있기 때문일까? 자꾸 그쪽으로 눈길이 간다.
선장의 공간 안쪽에는 핸드 드립에 사용되는 커피 도구들이 저마다의 리듬에 맞춰 놓여 있다. 그 모습은 흡사 <걸리버 여행기> 속 미지의 세계에 떨어진 이방인이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처음 구경하는 것처럼 생경하다. 익숙하고 친숙한 물건들이지만 그 공간에 놓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다른 물건들처럼 보인다.
따뜻한 드립을 주문한다. 음료와 동시에 제조에 필요한 동작까지 주문한 듯 바리스타는 조작된 움직임 속에서 커피를 내린다. 물을 데우는 작업부터 드리퍼에 필터를 꽂고 브루잉 키트를 장착하는 동작까지 모두 철저하게 계산된 듯한 인상이다. 꼼꼼하지만 리듬감이 있다.
커피 메뉴는 브루잉 음료만 제공된다. 에스프레소 음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머신에서 들리는 부산스러운 잡음이 없다. LP를 청음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턴테이블에 엘피를 올려서 노래를 수시로 바꿔서 틀어주시는데 그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까지 전부 서비스에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선율이 흐르는 동안은 장소와 시간이 허용할 때까지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충분히 공을 들인 드립을 카운터 너머로 제공받는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음악과 커피의 시간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곳곳에 보사노바 LP가 장식되어 있다. 지중해와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커피와 선장, 그리고 커피라는 모티브를 따와서 만든 공간 같다는 상상을 잠시 한다.
커피를 내리는 조타실 속 선장은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오더를 처리하기 위해 또다시 조작된 움직임을 선보인다. 그의 뒤편에는 턴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보사노바의 신을 모시는 신주 같이 보인다.
어쩐지 보사노바에는 차갑게 식힌 샴페인이 어울릴 듯한 인상이지만 브라질의 영혼이 커피에도 잘 깃드는 인상이다. 따뜻한 드립을 즐기며 듣는 보사노바는 영혼을 차분하게 하고 그에 상응하는 작은 울림을 준다. 소울과 음료 역시 페어링이 가능하다면 보사노바와 커피는 예상치 않게 그럴듯한 케미스트리를 자랑한다.
시노라는 워낙 작은 가게라서 자리가 협소한 편이지만 LP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투자해 방문해 볼 만하다. 가게가 지닌 특색은 여느 카페와 비교해 보아도 고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색이라는 단어는 ‘특별할 특’과 ‘빛 색’이라는 한자어로 구성된다. 특색이 있다는 단어 뜻 그대로 이 가게는 고유의 특별한 빛을 갖고 있다.
때로 빛이라는 것은 겉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닌 안에서 품고 있는 것이 뿜어져 나올 때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뿜어 나오는 빛이라는 것은 대체로 당해낼 수 없이 강한 매력으로 사람을 잡아당긴다. 카페 시노라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이곳만의 특별한 빛은 겉으로 발산하지 않고 속에 품겨 있다. 이 가게의 매력에 담뿍 빠진 사람이라면 아마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