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왐프 커피 - 니시신주쿠
Tokyo, Shinjuku City, Nishishinjuku, 7 chrome−21−12 れんげ荘 105号
키워드: 소규모 카페, LP 청음, 브루잉 커피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아시아에 확산되면서 유행에 민감한 몇몇 국가는 빠르게 흐름을 타고 시장에 합류했다. 국가 단위의 트렌트 세터 역할로서 한국이 빠질 리 없지. 그 어느 나라보다 발 빠르게 스페셜티 커피 유행을 정착시키며 놀라운 속도로 수요층을 끌어 모았다. 근 5년 사이에 나를 포함한 스페셜티에 '스'자도 모르던 문외한들이 이러저러한 고급화된 커피를 접하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에서 제공하는 원두는 맛이 획일화되어 안정적인 반면 계속 마시다 보면 지루하고 매력이 없게 느껴진다. 이런 느슨한 시장 흐름에 고품질화된 원두를 공급받아 제공하는 스페셜티 커피는 소비층에게 강력하게 각인되기 시작한다. 이를 취급하는 로스터리와 카페들의 수요가 번져나갔고 이제는 '나 커피 좀 마셔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스페셜티 커피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리지 않는 경지에 도달했다.
니시신주쿠에 있는 스왐프 커피 얘기를 꺼내며 서두에 스페셜티 커피라는 수식어로 포문을 연 데는 이유가 있다. 이 가게에 가면 카운터에 '도쿄 스페셜티 커피 트립'이라고 한국어로 적힌 책이 올려져 있다. 일본 소규모 카페에 웬 한국어 책인가 싶지만, 잠시 머물다 보면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손님 중 50-60%가 한국인 손님이며, 내가 내점 한 날에는 테이블 4개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이 전부 한국인이었다.
나 역시 스페셜티 커피에 진심인 이웃 나라에 와서 이런 가게들을 찾아다니는 사람 중 하나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라울 지경이다.
스왐프 커피는 약 4-5평 남짓한 공간에 바 테이블과 LP 진열장 그리고 4개의 테이블을 수용하는 작은 규모의 카페다.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는 공간도 협소해서 실내에 2명까지 받을 수 있고, 나머지 인원은 밖에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이유라면 스왐프 커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마냥 편하지 않은 안락함이 있기 때문이다.
자리는 협소하지만 다른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지 않기에, 오롯이 커피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만약 쉴 공간이 필요하다거나 작업할 곳이 필요했다면 다른 곳을 방문하지 이곳에 구태여 찾아오진 않을 테니 말이다. 대접받은 음료를 즐기며 턴테이블의 음감을 즐기는 시간은 이곳만의 스페셜한 경험 가치다. 마냥 편하지 않기 때문에 얻어가는 것이 생기는 셈이다. 나는 그 점이말로 이 가게의 순수한 장점이라고 본다.
한국에도 스왐프 커피와 같이 작은 규모의 카페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만의 브렌딩을 거쳐 매장을 꾸미고 특별한 배합의 원두를 사용해 소비층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가게가 참 많다. 아직 다 가보지 못했지만 지도 어플에 별표를 찍어둔 곳만 수두룩하다. 매일, 매달, 매년 우후죽순으로 매력적인 카페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다들 저만의 차별화된 브랜딩으로 나름의 셀링 포인트를 영리하게 찾아가는 듯하다.
주문 줄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내 앞뒤 손님이 전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이후 솔직한 심경으로 김이 살짝 빠졌다. 안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커플에게서도 한국말이 들려왔을 때는 한편으로 아차 싶었다. '나만 모르는 한국인 성지가 여기 있었군.'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대열에 합류했다는 사실이 멋쩍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주문 차례가 되었고 오트 라테를 한 잔 주문했다. 운이 좋게도 가게 안에 자리가 딱 한 군데 남아 있어서 마시고 가는 것이 가능했다.
주인 이시카와 씨 혼자 매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주문받는 속도와 음료가 나오는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급해하지 않고 빠른 손놀림으로 음료 제조와 손님 케어를 동시에 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스러웠다. 단골손님에게는 가벼운 안무를 묻고, 원두에 대한 질문이 중간에 들어오더라도 당황하거나 바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정중하게 응대했다. 가게 안을 능숙하게 컨트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덕분에 내점 한 손님들 역시 불편하거나 빨리 음료만 마시고 일어나야겠다는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한국인 손님만 나를 포함해 네 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으니 현지인이 슬쩍 주인에게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라며 말을 붙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테이블의 손님이 전부 빠진 틈을 타 주인에게 한 마디 붙여 봤다.
- 나: 손님이 전부 한국인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 주인: 한국인 손님이 많아요. 꽤 많은 편이죠.
- 나: 저도 한국에서 지인의 소개로 꼭 가보라는 얘기를 듣고 왔어요.
- 주인: 그러셨군요. (카운터에 놓인 책을 가리키며)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된 덕분에 많은 분들이 찾아오세요.
그러고 보니 카운터에 놓여 있는 저 책.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을 소개한 책에 실렸다고 치더라도 엄청난 인기다. 주인은 나에게 책을 건네주며 인기의 근원이 된 '그 요주의 책'을 읽어도 된다는 식으로 눈짓을 했다. 첫 장을 펴서 목차를 보는데 과연, 첫 번째 장에 실린 곳이 바로 이곳 스왐프 커피다. 커피에 순서를 매겨 목차를 정한 것은 아니겠지만 첫 번째 실린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이라는 특별한 곳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 나: 한국에서 취재를 나와서 스왐프 커피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건가요?
- 주인: 제가 아는 분 중에 000(이름)씨라는 지인이 있는데, 그분과 연이 닿아 출판 기획자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 나: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인기네요. 사실 아까 내점 한 분들이 전부 한국인이라 깜짝 놀랐어요.
- 주인: (웃음)
손님이 빠진 틈을 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주인의 단단한 성격과 조금은 고집스러운 일면이 보이는 듯했다. 커피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성격은 전혀 흠이 아니라 칭찬에 가깝다. 일을 대할 때 절대 굽히지 않는 면이 있어야 오래 지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가게를 빠져나오기 전에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홀빈을 구경하다가 우유와 잘 어울릴 법한 블렌드를 하나 추천받아서 구매했다. 이시카와 씨께 '고마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문쪽으로 향하는데 뒤통수를 향해 돌아온 말이 정겨웠다. '그럼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