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잡초
성정동 집 뒷담은 바로 논이다.
그 논을 지나면 논두렁 보다 조금 넓은 또랑이 있고 또랑길 양옆으로 잡초가 무성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장마철에는 또랑 길까지 물이 잠겨 또랑이나 논이나 하나가되어 누런 흙물이 넘실거리는 것을 보면 깊이를 알 수 없어 소름이 돈다.
말랑거리는 또랑 길에 발자국을 떼면 방금 찍힌 발자국 속에 물기가 배어 검은 흙이 찰떡처럼 신발에 붙었다가 떨어졌다한다. 발자국을 따라 개구리가 또랑으로 뛰어 들고 메뚜기도 사방에서 뛰어다닌다. 연녹색 메뚜기 한 마리를 잡고 뒷다리를 살살 흔들며 얼굴을 보면 짧은 더듬이가 귀엽게 움직인다. 바닥에 깔린 보라색, 흰색, 핑크색 키 작은 야생화를 한번 씩 만지작거리며 걷다보면 키보다 더 큰 잡초가 논두렁에서 또랑으로 또랑에서 논두렁으로 늘어져 풀로 만들어진 동굴길이 나온다.
이곳이 나만의 비밀장소다. 녹색동굴 입구에 서서 들어 갈 생각을 하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원을 이루기 직전처럼 두근거린다. 세상에 어떤 풀이 이렇게 멋드러지게 자란 것이 있을까! 하늘도 풀끝으로 가려져 뾰족뾰족 연두 빛이 돌고 대 낮 인대도 풀 속 길은 어두운 녹색빛이다. 이길을 오래있고 싶고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 걸음이 점점 빨라지다 느려지다 빨라지다 느려지다 한다. 풀이 무성한 진녹색을 빠져나오니 눈부신 햇살에 반짝이는 또랑 물이 보인다. 이보다 아름다운 길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