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곡리 방

오곡리

방 (이불)

by 이강

1. 이불

어둠침침한 건너 방은 좁다.

워낙 좁은 방에 비해서 많은 살림살이가 구석구석 박혀있고 쌓여있고, 걸려있고, 딱 봐도 옛날처럼 생긴 장 농이 세 개에 그 위에는 보따리, 작은 상, 큰상이 켜켜이 겹쳐있고, 오래된 알 수 없는 누런 박스가 촘촘히 크기별로 천정까지 쌓여있다. 재봉틀, 앉은뱅이 책상도 나란히 자리 하고 벽에는 하얀 천을 칭칭 감은 긴 못에 철지난 옷이 3,4개씩 겹쳐 걸려있으며 십자수로 수놓은 광목천으로 감싼 한복도 여러 벌 걸려있다.

영희언니 책상 위에는 책 대신 이불이 가지런히 쌓여있고 천정 맨 윗부분에는 올망졸망한 베개가 찔러 박혀있고 바로 옆 재봉틀위에도 나머지 이불이며 베개가 조심스레 쌓였다. 어두운 방구석에 놓인 화려한 꽃무늬 이불은 할머니가 안 계신 날 최고의 놀이터다.

켜켜이 쌓인 이불 앞에 서서 꽃무늬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려보며 색색별 요란한 꽃 중에서 유난이 노란색 목단 꽃은 어두운 방에서도 빛이 난다. 많은 이불 중에서 우리가 덮는 이불은 주황색 바탕에 리본을 맨 곰돌이가 꽃다발을 들고 뾰족한 벽돌집 앞에서 나비를 잡으려고 뛰어 다니는 이불이다. 두툼하고 딱딱한 색동요대기는 할아버지만 갤 수 있는 이불이라 무겁고 커서 요대기 속에 들어가면 숨이 막히고 무거워 끌고 몇 발자국 가기도 힘들다. 색동요대기의 일곱 가지 색은 무지개 색과는 다르게 노랑, 보라, 빨강, 연두, 흰색, 자주, 파랑이며 할머니는 오방색이라고 부른다.
쌓인 이불사이로 손을 비 짚고 넣어보고 발도 넣어보다가 머리도 넣어본다, 떨어진 베개로 계단을 만들어 이불위로 올라가려다 베개만으로는 부족해서 장식장위에 있는 이것저것 묶여진 보따리까지 쌓아 놓고 겨우겨우 이불 위를 올라간다. 어차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불 위에 올라앉고 싶었으니 할머니한테 혼나도 할 수 없다. 산처럼 높이 쌓아 놓은 이불을 보면 올라앉고 싶었고 이불 위를 올라가는 기분은 키 큰 나무 위를 올라가는 것처럼 아슬아슬 했다. 어렵게 이불꼭대기에 앉아 있으니 성취감 비슷한 전율이 온다. 살짝 흔들거리는 움직임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중심을 잡아야지 크게 몸놀림을 하면 이불이 무너질 것 같이 크게 휘청거린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꽤 높은 곳에 올라온 듯 현기증이 나서 숨고르기를 해야 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며 알록달록 꽃무늬 이불은 꽃향기도 나고 잠자리와 나비도 날아다니고 폭신한 꽃밭 위로 무지개다리가 생기더니 앉아만 있어도 뛰고 있고 날고 있는 기분이 든다. 반짝이는 공단이불 위에서는 이른 새벽 시골 아침 냄새, 방금 빨랫줄에서 걷은 빨래 냄새, 할아버지 머릿기름 냄새, 누룽지 냄새가 나며 이곳은 할머니 댁 건너 방을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곳이 된다. 들키면 할머니한테 혼난다 해도 올라오길 잘했지 하마터면 이 좋은 것을 못하고 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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