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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Jul 30. 2022

동동주

동동주
 
  마당에 작은 멍석이 깔렸다. 멀리서 보기에 누룽지인가? 밥은 밥 같은데 누런색이 많이 도는 것이 밥같기도 하고 떡 같기도 하고 알고 보니 찹쌀로 만든 꼬들밥이란다. 할머니는 일일이 손으로 펼치며 꼬들밥을 한 웅큼 입에 넣어준다. 밥이긴 밥인데 꼿꼿해서 누룽지에 가까운 상태다. 여기저기 쏘다니다 출출하면 슬그머니 멍석에 놓인 꼬들밥을 한주먹씩 먹어가며 놀다보니 고소한 것이 먹을 만하다. 

술 좋아하는 할머니의 술 담그는 재주는 동네에서도 알아준다. 일 년에 한번씩 만들어 먹는 동동주의 날이면 건너 방에 길고 좁은 술 항아리가 들어 오고 그 안에  마당에 널던 꼬들밥과 누룩을 골고루 섞어 채운다. 몇 일 지나면  항아리 속에서 ‘뽀글뽀글 퍽퍽’하루 종일 크고 작은 소리가 나고 동동주를 만드는 기간 동안은 괜히 할아버지도 관심을 보이고 두런두런 안하던 대화도 많아지니 두 분 보기가 좋다. 
 할머니 술이 완성 되서 채에 거르는 날이면 동네사람들이 마당 멍석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동동주에 부침개 와 김치 쪼가리를 먹고 몇몇 아줌마들은 부엌을 들락날락 거리며 칼국수를 만든다. 술이 들어가니 목소리가 커지고 노래를 부르며 생전 목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한 소심쟁이 동네 할아버지가 엉거주춤 이상한 몸짓으로 춤을 추다니 할머니의 술은 사람을 들뜨게 만드나 보다. 

우리 할머니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양손을 들어 덩실덩실거리며 춤을 추는 것이다. 눈을 의심했다. 춤추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색했지만 우리할머니라서인지 그럭저럭 볼만했다.

 마당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에게서 시큼한 술 냄새가 번져오고 손가락으로 김치를 집어먹던 곰배아저씨 입 언저리며 광대뼈 근처까지 김칫국물이 들었다. 수냉이 할머니는 일어나려고 하다가 비틀거려 다시 주저앉아 사람들이 거들어 준다. 사람구경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 처음 알았다. 좀 전에 대문을 나가던 진덕이 아줌마가 어젯밤에 제사였다고 동태전과 두부전을 푸짐하게 가져 온다. 대문 근처에서 싸움이 났는지 아저씨 둘이 맞붙어 바닥을 구르며 혓바닥이 꼬인  옹아리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재미있게 듣고 있는데 아쉽게도 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뜯어 말리고 동네 아줌마들은 저 인간들은 만나면 염병 떤다고 가만두라며  욕지거리를 한다. 오늘은 볼거리가 풍성한 날이다. 몇 일 동안 정성들여 만든 할머니의 동동주는 마당 한가득 사람들을 웃고 떠들고 울고, 불고 난리치게 만드는 요술물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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