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가까운 지인분이 극단적 선택을 하셨다
두손이 떨떨 떨리고 숨이 막히는것이 믿을 수가 없엇다.
그분은 평소에 세상 행복해 보였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사신 분으로, 성품이며 돈이며 미모며 자식또한 의사였고 언니또한 약사로써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이 상황에 극단적인 선택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그 속에 들어가봐야지 사람속은 모르는법이여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을 엄청 섞고 살았나보네 하고 말하신다. 그말에 어느정도 공감은 가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되는 것일까?
극단적인 선택은 무엇일까?
인간은 어느 상황에 이같은 선택을 내리는 것일까?
동물과 고차원적인 인간과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끝낼수도 있다는 고차원적인 잔인한 점이다. 장점인지 단점인지..
언니는 이런 선택을 하기까지는 끈임없이 자신을 인식하는 시간이 있었을것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가깝에 직면하면서 무수히 많은 고통을 만들어내고 결국에 고통으로부터 멀어지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외적인 고통이라면 병원이나 약으로 해결할수 있고 치료를 하면서 하루하루 진전되는 것을 알수있지만 내적인 고통은 살아있는한 어딜가든 가시처럼 돋아난다. 그 가시가 무뎌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시간과 상관없이 커져가기만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지식이 높아지면서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단편적인 고통은 이제 고통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일상적인 고통은 해결방법도 다양하고 커다란 공감대로 고통을 치유하는 동우회나 검색만하면 해결책이 우수수 쏟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고통이 세분화 되고 다양해지면서 남들과 나누고 싶어도 말하기가 꺼려지는 고통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세상 행복해 보이는 분들에게 있는것이 아닐까 한다. 이분은 사회적인 위치로인해 겉으로 행복하고 부유해보이는 것 처럼 남들 앞에서는 웃어야한다는 이중적인 괴리에 대한 고통도 있었으리라 본다. 그렇다고 지식층과 부유층의 고통이 더 아프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워 혼자 해결하기까지 긴 시간동안 아픔이 컸으리라 짐작해 보는 것이다.
나는 어느 축의 고통일까?
인간이라면 마땅이 고통을 수반하는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왕이면 세속적인 고통으로 많은 사람과 공감을 형성하며 서로 나눌수 있는 고통이길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그분의 명복은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