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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May 23. 2021

Save Me, Plz

언제나 끝은 자아비판으로 마무리되는 일요일 저녁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난 2주 정도 개인 노트북의 전원을 켜지 않았다.

아마 인대가 늘어난 왼손 중지 때문에 타이핑이 불편해서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접속하지 않고 있는 시나리오 카페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릴없이 텅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을지언정 뭐라도 한 줄 끄적여야 될 것 같은 의무감에 적어도 주말 이틀 중에 하루쯤은 손바닥 두 뼘이 채 모자란 앙증맞은 자판을 두드리곤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아무렇지 않은가 보다.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늘어갈수록 일상은 평화롭다.

어릴 적, 삶은 개구리 증후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는다면 바로 뛰쳐나오지만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눈치채지 못하고 결국은 익어 죽는다는, 다소 가학적인 실험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 기억과 달리 최근 학계의 입장은 달라졌다고 한다.

끓는 물에 담가진 개구리는 오히려 즉사할 것이고 반대로 찬물의 개구리 쪽이 물이 데워지기 전에 솥을 뛰쳐나올 것이란 견해.

뭐 어찌됐든 우리의 불쌍한 개구리는 생을 마감하는 거지만.

애초의 실험을 통해 인류가 변하는 환경에 즉각 대처하지 못하면 큰 화를 당할 거라는 교훈을 주고 싶었겠지만 결국 우리는 조금 늦거나 빠르게 삶아지는 개구리 신세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들 지금의 나를 끄집어낼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멋대로 기대하는 게 옳은 일인가?

아니면 연약하기 짝이 없는 물갈퀴로 열심히 물을 휘젓고 다니다가 그만 지쳐서 수면에 동동 떠있는 채로 그래, 이런 삶도 나쁘진 않았다... 하며 체념하듯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아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생각 한 가지.

하다못해 초등학교 앞 문방구의 뽑기 기계조차 동전을 넣고 힘차게 레버를 돌려야 얄궂은 플라스틱 볼 하나를 내어준다.

정말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면 정신 차리고 일어나 먹이고 돌보고 가꾸자.

그래, 아직은 이것이 지금까지의 최선의 결론이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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