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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Apr 02. 2023

4월, 노르웨이의 숲에서 하나와 앨리스는 춤을 추었지

봄이다.

완연한 봄이다.

나는 봄이면 항상 이 삼종신기가 떠오른다.


원제보다 ‘상실의 시대’로 더 널리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이와의 슌지의 영화 ‘4월 이야기’

그리고 ‘하나와 앨리스’.

이 중 ‘하나와 앨리스’는 운 좋게도 개봉 당시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 유명한 아오이 유우의 교복차림 발레 시퀀스를 침 한번 꼴깍 삼키지 못한 채 집중해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나는 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몽글몽글하지만 코를 간질이는 꽃향기 때문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어 봄에는 보통 멍한 상태였다.

게다가 어린 시절, 내성적인 나에게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새 학기라는 존재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부담이었다.

새터 가기 전날 밤, 잠 못 이룬 채 걱정을 하다가 그만 열이 펄펄 나서 불참한 것이 나의 대학시절 첫 번째 추억일 정도였다.


적당히 사교성이 생긴 어른이 되어서조차 봄이 되면 어쩐지 나른하고 피곤하기만 했다.

큰 일교차 탓에 더웠다 추웠다 갈팡질팡하는 볕과 바람 사이에서 나의 마음도 영 갈피를 못 잡곤 했다.


학기 초, 같은 전공에서는 딱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어 수업은 언제나 혼자 듣는 편이었다.

그러다 공강 시간에 갈 곳이 없어(예전에는 지금처럼 카페가 흔치 않았기에- 물론 커피 사 먹을 돈도 없었겠지만...) 찾아간 도서관의 구석자리에서 청춘의 바이블과도 같은 ‘상실의 시대’를 처음 만났다.

꽃가루 알레르기 덕에 반쯤 감긴 눈으로 겨우 페이지를 넘겨보았지만 도무지 머릿속에 활자가 들어오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책을 덮고 반납 트레이에 올려두었다.

하루키와는 맞질 않는군, 하며.

그래 놓고선 하루키의 단편, 장편소설, 에세이를 닥치는 대로 읽고 사 모으게 된 것은 조금 먼 훗날의 이야기.


영화 ‘러브 레터’를 계기로 푹 빠져버린 이와이 슌지 월드.

그중에서도 유독 밋밋하다는 평을 듣는 ‘4월 이야기’는 아름다운 미장센과 더불어 대학 새내기의 불안함을 첫사랑의 설렘과 함께 잘 담아냈는데 러닝타임 내내 잔잔하게 흐르던 피아노 오리지널 스코어를 꽤 오랫동안 들었고 지금까지도 종종 듣고 있다.

허공에 낚싯대 던지는 연습을 하며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주인공이 꼭 나 같아서였을까.

나는 이 영화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단아하고 아름답지만 어딘가 처연하고 서글픈 목련이 떠오르는 ‘상실의 시대’,

수줍게 핑크빛으로 물든 볼을 감추려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벚꽃 잎 같은 영화가 ‘4월 이야기’라면 통통 튀는 쨍한 노랑의 발랄한 개나리 같은 영화가 ‘하나와 앨리스’다.


모두가 청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림체도 내용도 정말로 제각각이다.

나의 청춘은 과연 그 셋 중 어디에 속해 있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여전히 그곳을 맴돌고 있는 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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