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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난다 Dec 05. 2017

커피 로스팅 이야기

커피, 이야기가 되다.

커피 로스팅이나 핸드드립 커피에 관한 전문 서적들을 읽어보면 저자마다 추구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답을 찾기 원했던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겠지만 사람마다 커피의 향미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부분이다. ‘중지(衆志)를 모아 내 뜻대로’라는 우스갯소리처럼 결국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는 것이 로스터가 할 일이다.


‘초록색의 생두에 열을 가하면 적갈색의 원두가 되는데 이 과정을 로스팅이라고 합니다.’


커피 입문자들에게는 이런 간단한 문장으로 로스팅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스팅 라이선스 취득을 원하거나 직접 로스터리를 운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로스팅에 필요한 장비는 물론 생두의 특성과 화학적ㆍ물리적 변화 등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로스팅에 관한 이야기는 A4 인쇄물 몇 장으로 정리될 수도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 두꺼운 책 한 권이 될 수도 있다.

독자들에게 로스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마음을 먹은 후에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생각이 도달한 지점은 '너무 당연해서 책에는 없는 내용'을 다루는 것이다.


'가족, 친구, 직장, 공기, 물'


무심코 지나치고 함부로 대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커피 로스팅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것이다. 독자들은 아래의 글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닌 ‘커피난다가 로스팅을 이해하는 방식’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1. 로스팅 일정


나는 매주 월요일 로스팅을 한다. 원두의 종류는 10여 가지 내외인데 주중에 품절되는 원두가 있으면 그날그날 소량씩 로스팅을 한다. 손님의 입장에서 보면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종류의 원두가 진열되어 있어서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로스터는 참으로 바쁘다.

싱글 오리진 원두를 판매하지 않고 향미가 뚜렷이 구분되는 블렌딩 원두만 서너 가지 판매한다면 로스팅 시간이나 횟수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그런 업체들이 많이 보이는데 경영이나 재고관리나 측면에서 효율적이고 현명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 동안 판매하고 남은 원두는 다음 주로 넘겨서 판매하지 않는다. 사실 향미에 심각한 결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로스팅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난 커피를 구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재고로 남은 원두는 카페에서 사용하는데 소량씩 자주 로스팅을 하기 때문에 재고가 많지 않고 관리도 쉽다.


2. 로스팅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


나는 핸드드립이든 로스팅이든 늘 큰 변수를 위주로 생각하고 말한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카페에 오는 손님들과도 이러한 굵직굵직한 변수들을 위주로 커피의 향미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 큰 이견이 없다. 간단명료하고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커피에 대해 특출한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지만 전혀 속상하지 않다. 오히려 복잡하고 고집스러운 논리를 만들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


모든 음식이 그러하듯이 커피의 향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원재료(생두)의 상태이다. 품종, 생육, 가공방식에 따른 생두의 특징은 로스팅이나 추출의 기술로 좌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로스팅 기법과 추출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웻헐(Wet hulled) 방식으로 가공된 인도네시아 만델링 원두에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내추럴의 엄청난 베리향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료라는 절대적인 변수를 제외하고 커피 로스팅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를 살펴보자.


가. 배출 온도

단단한 초록색의 생두가 일정 시간 열을 받으면 적갈색의 원두가 된다. 이는 커피 생두에 함유되어 있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등이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과 캐러멜화(Caramelization)를 거치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이러한 화학적인 변화를 통해 우리가 커피라고 부르는 향과 맛이 생기는 것이다.


로스터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한 커피 향미가 형성되는 지점까지 로스팅을 하게 되는데 그 지점이라는 것이 바로 배출 온도이다.


로스터는 머신 내부의 커피 빈(Bean)의 온도가 자신이 정해 놓은 온도에 도달되는 순간 배출구를 열어 원두를 빠른 속도로 냉각시킨다. 흔히 말하는 라이트 로스팅(약배전)은 배출 온도가 낮다는 말이며, 다크 로스팅(강배전)은 배출 온도가 높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무리 품질이 우수한 생두라 할지라도 덜 익거나 혹은 타버린 상태에서는 좋은 향미 성분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출 온도는 생두의 품질만큼 로스팅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일반적으로 과일과 같은 달콤한 향미를 지닌 커피는 1차 크랙 직후에 배출을 한다. 커피난다에서 사용하는 로스팅 머신을 기준으로 하면 213~215℃ 정도이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파푸아 뉴기니 마라와카 블루마운틴, 엘살바도르 파카마라 등이 해당된다.


케냐 지방의 커피는 대체로 신맛이 강한 편인데 나는 2차 크랙이 시작되기 직전인 217~219℃ 정도에서 배출하여 마시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로 신맛을 조절한다. 하지만 품질이 우수한 케냐 생두를 만나면 1차 크랙 직후에 배출하여 신맛을 즐기는 손님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만델링은 배출 온도가 낮으면 흙냄새나 건초 냄새 등이 심하게 나기 때문에 2차 크랙 초반 223℃나 중반 230℃까지 포인트를 넓혀 로스팅을 한다.

어떤 생두든 1차 크랙이 끝나기 전인 210℃이하의 온도에서 배출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추출한 후에 풋내나 콩 비린내, 아린 신맛이 나기 때문이다. 특히 발육상태가 좋지 않은 생두를 낮은 온도에서 배출하면 기분 나쁜 향미가 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지만 생두가 덜 익었다는 것은 우리가 커피라고 느끼는 향미 성분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설익은 밥을 먹는 상황을 떠올리면 적절한 비유가 될 것 같다.


2차 크랙이 끝난 직후 인 235~240℃까지 강하게 로스팅을 한 커피는 진하고 깊은 쓴맛과 긴 후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과일과 같은 밝은 신맛과 단맛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향미를 장점으로 하는 커피의 경우 2차 크랙 초반 220℃를 넘겨서 로스팅을 하지 않는다.


나. 로스팅 시간과 화력(열량)

커피의 향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규격화된 로스팅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스페셜티커피협회(SCA)에서는 로스팅 시간은 8~12분, 원두의 색상은 아그트론 컬러(원두의 색상) #55~#65라는 샘플 로스팅(Sample Roasting)을 규정해 두고 있다.

SCA에서 정한 샘플 로스팅 시간은 상업 로스팅 시간에 비해 다소 짧은데 스페셜티 커피를 판매하는 로스터리의 경우 대체로 9분대에 1차 크랙에 도달하고 12~13분대에 배출을 한다.


로스팅 시간은 화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케냐 AA를 220℃에서 배출할 때, 화력이 강하면 커피 빈의 온도가 220℃에 도달하는 시간은 짧아지고 화력이 약하면 반대로 길어질 것이다.


강한 화력으로 로스팅 시간을 줄이는 경우는 스테이크의 레어(Rare)에 비유할 수 있다. 열이 직접 닿는 커피 빈의 표면은 충분히 익는데 반해 속은 덜 익는 상황이 생긴다. 소고기와 마찬가지로 품질이 좋은 생두일 경우 시도해 볼 수 있는 로스팅 방법이다.

낮은 화력으로 로스팅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것은 일반적으로 권하지 않는 방법이다. 화력이 낮아 9분대를 예상한 1차 크랙이 15분대에 왔다면 캐러멜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커피의 향미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고 밋밋한 커피가 된다. 이러한 현상을 ‘빵처럼 구워졌다는 의미’에서 베이크드(Baked)라고 부른다.


커피 빈은 로스팅이 끝나면 무게는 12~20% 정도 감소하고 부피는 80~100% 정도 커지는데 로스팅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원두가 제대로 팽창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랙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마치 김 빠진 맥주를 대하는 기분이다.


흔히 1차 크랙이 일어나기 이전까지의 시간을 흡열 반응기라 부르고 1차 크랙 이후부터를 발열 반응기라고 부른다. 물론 로스팅의 전 과정에서 흡열과 발열이 동시에 일어나지만 로스팅의 초반에는 생두가 열을 받아들이는 흡열 반응이 주로 일어나고 후반부에는 반대 현상이 주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흡열 반응이 일어나는 동안 초록색의 생두는 밝은 노란색으로 변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분이 증발하고, 생두 조직 전체에 골고루 열이 전도된다. 흡열 반응기에 충분하고 안정적으로 열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후반부에 아무리 강한 화력을 공급하더라도 커피 빈의 온도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스팅 초반 화력조절에 유의해야 한다.


다. 그 외의 변수들

앞서 설명한 배출 온도, 로스팅 시간, 열량 공급은 커피의 향미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이므로 로스터는 이를 우선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로스팅에 영향을 미치는 그 외의 변수들로는 드럼의 구조, 열원의 종류, 댐퍼 조절, 생두의 품종 및 가공 방식, 투입 용량 등이 있다.


방정식의 변수가 많을수록 풀이과정이 복잡해지는 것처럼 너무 많은 변수들을 일일이 챙기다 보면 커피 로스팅 또한 혼란스러울 것이다. 상수를 늘리고 변수를 줄여 예측 가능한 로스팅, 재현성을 높이는 로스팅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로스터는 어떤 사람일까?

늘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커피에 대한 모든 질문의 답을 ‘다르다’라는 말에서 찾는다. 그래서 최고의 로스터라는 말은 내게는 난센스다. 차라리 ‘최고로 돈을 많이 번 로스터’라는 말이 더 와 닿는다.


좋은 품질의 생두를 사용하고 정해진 프로파일에 따라 변함없이 일정한 향미를 만들어 내는 로스터. 손님들에게 커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로스터가 주변에 있다면 여러분은 복 받은 손님이다. 굴러온 복을 평생 누리고 싶다면 프랜차이즈 카페로 향하는 친구의 손을 이끌고 그 로스터가 일하는 공간에 열심히 출근도장만 찍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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