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가 되다.
“우리 선생님은 질문을 하면 지금 말해줘 봐야 모른다고 해요. 3년쯤 열심히 커피를 내려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카페 창업을 위해 핸드드립 커피를 배우고 있다는 손님이 내게 하소연을 했다. 핸드드립 커피를 배우는 동안 생긴 궁금증을 선생님에게 물어본 것인데 명확하게 대답을 안 해주시니 답답하다고 했다. 그날, 손님의 과묵하신 커피 선생님 덕분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투정을 받아줘야 했다.
커피를 볶고, 내리고, 향미를 평가하는 과정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강생과 대화를 나눠보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커피를 즐기는 일은 습득하기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원리이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익힐 수 있는 기능이기도 하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오래전 중국 영화에서 쿵후를 가르치는 사부(師父)와 같은 커피 선생님의 교육 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도대체 커피 한잔 즐기는 일에 무슨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가며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늘 강조하지만 커피의 향미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생두와 로스팅이다. 커피를 추출할 때 콜라나 식초를 들이붓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 둘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압도적인 변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핸드드립 커피 교육은 추출기구, 온도, 시간, 물줄기 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러한 교육 방식, 다시 말해 지엽적인 내용을 세분화시키고 그것이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교육하는 방식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각자 마음껏 하기를 권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커피라는 음료가 주는 즐거움을 실컷 느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관점에 반하는 교육방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말과 행동, 교육장의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커피라는 영역 속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손님들은 내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자신이 집에서 커피를 내리는 동안 겪었던 일을 들려주곤 하는데 주로 실패담이다.
“나는 아무리 해도 이런 맛이 안 나요.”
“불리기에서 실패하면 추출하는 내내 기분이 망쳐요.”
“물줄기가 동그랗게 안 그려져요.”
“드립포트를 더 좋은걸 살까 봐요. 물줄기가 너무 굵어서.”
손님들의 투정을 들을 때마다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추출과정이 조금 미흡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맛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커피를 처음 시작할 때 너무 엄격한 교육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당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를 떠올려 보자.
여러분은 그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가?
‘작가가 누구지?’
‘제목이 뭘까?’
‘가격은?’
누구나 한 번씩은 해 보았을 생각이다. 습관적으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자신을 가두려는 행위를 멈추고 본인의 감정에 집중해 보자.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관점으로 보고 느낄 때 감상이라는 말이 더 빛나는 것이다. 커피도 그래야 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질서에서 벗어나 커피라는 음료가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보자. 향기에 반하고, 맛에 취하고, 여운에 감동하는 시간에 왜 불평불만을 해야 하는가?
세상의 모든 입문자를 교육하는 사람은 그들이 접하게 되는 새로운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그릇된 지식과 복잡한 형식에 갇혀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무척 애석한 일이다.
바리스타나 로스팅 자격증을 취득할 목적이 아니라면 멋진 커피 선생님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족, 친구, 연인처럼 자신의 주변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자. 그들은 커피를 마시는 방법뿐만 아니라 커피를 왜 마시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