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언어
마을만들기
유령 하나가 도시를 떠돈다. ‘마을만들기’란 유령이다. ‘마을만들기’란 말은 일본에서 1998년 공동화한 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한 개념이다. 당시 마을만들기(まちづくり) 3법이 제정되었는데 도시계획법, 소규모소매점포입지법, 중심시가지활성화법으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일본 시민사회는 ‘마을만들기’의 핵심을 마을 커뮤니티 회복으로 봤다. 법과 행정으로 틀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마을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을 커뮤니티란 무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만만치가 않지만 마을만들기를 할 때 당사자들이 반드시 찾아야할 답이기도 하다.
한국은 압축 성장을 거치면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모인 사람들의 주거 문제 해결을 아파트에서 찾았다. 서울이 아파트로 만실이 되자 수도권으로 아파트는 확장되었고 아파트 열풍은 한반도의 스카이라인을 바꿔 놓았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하기도 했는데 프랑스에서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한국의 아파트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분리된 상태를 뜻하는 apart·ment란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해 서구에서 공동주택으로서 아파트는 기존 커뮤니티와 ‘분리’한 집단 주거 성격이 강했다. 도시 노동자나 저소득계층을 따로 모아놓은 것이다. 그야말로 주류로부터 분리당한 삶의 상징이 아파트 거주였다. 그러나 서울의 아파트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단지’화한 아파트는 브랜드가 되어 중산층의 상징이 되었다.
도시PD이자 정치인 김진애 박사는 아파트 자체는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한다. 맞다. 아파트란 공동주택 자체는 나쁘긴커녕 오히려 장점이 많다. 특히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다 에너지 효율성도 높고 각종 사회 인프라를 확충하기에 편리한 시스템이다. 문제는 단지다. 같은 동네라 할지라도 아파트 단지는 담장을 높여 자신들의 공간을 사유화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융화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지 안에 있는 아파트 주민끼리 커뮤니티가 공고한 것도 아니다. 그 어떤 주택보다 집적된 공동주택임에도 커뮤니티는 없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더욱 문제는 소비를 부추기는 환경이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인근에 반드시 대형마트가 자리 잡는다. 이는 똑같은 아파트 평면에 거주하는 삶의 소비 스타일이 비슷하기에 기업과 마트 입장에서는 노다지라고 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단지가 들어서면 기존 동네의 길거리 풍경이 바뀐다. 오래된 밥집, 빵집, 카페는 대형 프랜차이즈에 밀려나게 된다. 이렇다 보니 한국 도시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다시 말해 지역 특색은 물론 지역 고유의 골목 경제생태계가 사라져 버린다. 똑같은 집, 똑같은 자동차, 똑같은 티브이, 냉장고 그리고 똑같은 교육. 한마디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은 사라진다.
한국 도시에서의 마을만들기 운동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됐다. 그것도 청년층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밀레니얼의 반격인 것이다. 삶의 획일화와 경쟁으로 평가받는 사회의 피로도가 임계점에 다다랐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이들은 아파트에서 살든 아니든 자신이 사는 동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자동차로만 지나던 동네를 산책하면서 자신이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공간을 장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매우 큰 변화다. 북촌과 서촌 그리고 익선동과 망원동, 성수동과 이태원 골목이 뜬다고 그쪽으로 ‘구경’만 갈 게 아니라 우리 동네도 그렇게 만들어 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경제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할 일이 있다. 다름 아닌 마을 커뮤니티 복원이다. 마을 커뮤니티는 한마디로 상부상조라 요약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것. 사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살아왔다.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커뮤니티가 사라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어느새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아 오는 작업이 바로 ‘마을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도시재생’이나 ‘지역혁신’이란 이름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이 확장되고 있기도 한데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이 주체가 되도록 펼치는 게 중요하다. 또한 지역 주민이 즐겁게 놀 수 있는(play) 곳이어야 재생(play)이 완성된다. 그래야 개발 자본이 난입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즉, 마을만들기는 자본주의적 삶에 지속적으로 항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을만들기는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 지역이 고유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확보한 거점(마을, 공간)에 시간(역사)를 담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란 바로 공유의 시간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동네 컨텐츠가 되고 동네 자산이 되는 것이다. 자, 만국의 동네주민이여 단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