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삶, 그리고 미나리

로컬단상

by 소보로

LH공사 직원의 땅투기 문제가 연일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기대했던 무주택자들은 이 사건으로 큰 배신감을 느꼈다. 공정사회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는 건 물론 상대적 박탈감이 컸을 것이다. 최근의 부동산 상승세는 청년층에게 지금 집을 안 사면 영원히 내집 마련을 못 한다는 불안감을 안겨줬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하우스푸어’라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 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다)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진 배경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다른 한편에서는 도시를 떠나 로컬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내집 마련에 일생을 걸면서 팍팍한 도시에서 경쟁의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겠다는 것이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를 맞은 지방 소도시들이 지역 재생을 위해 도시의 청년층에게 구애를 보내는 시류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 정부와 지자체는 최근 청년층의 지역 이주를 돕기 위해 많은 지원과 정책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예컨대 행안부는 지난 2019년 목포, 서천, 문경 세 곳을 선정하여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지원한 바 있다. 실제로 목포는 ‘괜찮아마을’, 문경은 ‘달빛탐사대’ 그리고 서천은 ‘삶기술학교’라는 결과물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 1년 코로나19 사태를 지나오면서 우리 사회는 재택근무나 원격 근무와 같은 비대면 문화에 익숙해졌다. 아울러 감염 위험이 도시에 비해 적은 지역살이는 점점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지방의 사회·문화 인프라가 부족해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국 어디를 가나 인터넷과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의 발달로 심리적 거리감도 줄었으며 도시에서나 즐길 수 있는 문화 인프라도 속속들이 갖춰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책 지원이 잘 되어있다고 해도 로컬 현장에서 청년들이 자립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청년 세대가 지역 자원을 발굴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 브랜드를 만들어 내기까지는 그럭저럭 성과를 보이고는 있지만 문제는 이들이 생산한 재화를 소비로 소화해줄 시장 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 재생의 완성이 청년 이주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해당 지역 주민의 삶이 함께 나아져야 하는 데 있다는 고민과 연결된다. 다시 말해 지역의 쇠락한 상가 거리에 청년들이 모여 참신한 공간과 가게를 오픈했다고 해도 막상 그곳에 방문하여 소비를 해줄 누군가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서강대 지역재생연구회를 이끄는 류석진 교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회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류석진 교수는 지역의 인구소멸 문제는 도시의 청년층을 비롯한 새로운 이주 그룹을 유치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말한다. 전체 인구수에는 변함이 없는 제로섬 게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자본은 신뢰와 호혜성 그리고 네트워크로 이루어지는데 사회자본이 많은 공동체가 되어야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지역에 이주하지 않더라도 해당 로컬과 관계를 맺으며 주기적으로 방문한다든지 또는 지역의 생산물을 적극적으로 소비해줄 수 있는 관계 인구 확보만 되면 지역은 살아 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 그럼 이러한 상상이 가능하다. 참신하고 혁신적 청년들이 로컬을 터전삼아 뭔가를 생산하면 상대적으로 생활이 안정된 중장년층이 로컬을 방문해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신뢰자산을 형성하는 거다. 그러한 신뢰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사람들의 방문이 늘면 누군가는 정착을 고려하지 않을까? 도시에서의 경쟁은 청년뿐 아니라 은퇴를 앞둔 시니어들에게도 마찬가지의 고난이다. 은퇴 후 소득이 줄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도시에서 지출을 줄이면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로컬을 선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역소멸 문제를 다룰 때 청년층뿐 아니라 시니어층 이주도 고려해야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최근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화제다. 희망을 안고 저 멀리 낯선 이국땅에 뿌리내리려는 한국인 가족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결국에는 뿌리를 내리고 한걸음씩 나아갈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고 영화는 끝난다. 물론 로컬 이주는 이민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디아스포라(이산)의 삶으로 보자면 맥락이 통한다. 어차피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산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집이 없고 일자리가 없어 때마다 옮겨 다녀야 하는 그런 삶 말이다.


그렇다고 노마드적 삶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과 IT 기술의 발달은 물리적, 심리적 이산의 벽을 무너뜨린 지 오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사회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는 셈이다. 미나리가 뿌리내리듯 노마드의 삶도 언젠가는 정착으로 마감하는 게 인생이다. 중요한 건 커뮤니티와의 연결이다. 로컬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다. 살기가 어려우면 함께 헤쳐 나가면 된다. 그것이 바로 신뢰자본의 힘이고 신뢰자본을 만드는 게 지역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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