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맛, 질문할게요(1)

해주세요, 질문

by 겨울해


어느날 A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이였기에 A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A는 아니었다.


3시간 가량의 대화 중에 나에 대한 이야기의 지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더이상 A에게 궁금한 것도 없었다. 나는 질문을 멈췄다.


그래도 A는 말을 했다.




나는 만났을 때 나를 향한 질문이 없는 사람과는 다음 만남을 구체적으로 기약하지 않는다.


질문이 없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위주의 ‘말’이다. 상대에 대한 적절한 관심이 오고가질 않으니 대화꽃이 도통 피질 않는다.


“내가 이랬고 저랬고 그랬는데...”


듣다 듣다 지쳐서 이야기의 주제를 나에게 끌고와 보지만 소용없다.


”그랬어? 근데 그거에 대한 내 생각엔 말이야 이런것 같고 내 경험상 저랬고 그래서 난 이걸 느꼈어. 너도 이렇게 해야해. 왜냐면 저번에는...”


설상가상 상대가 연장자면 더 큰일이다. 대화를 가장한 부탁도 하지 않은 조언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장황한 자기 이야기는 덤이다.


당신과 나의 상황이 다르고 근본적으로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인 것을 어필해보지만 무(無)질문의 사람에겐 이것이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그 때부턴 영혼을 하나 떼어둔다. 사회성 만렙 영혼을 작동시켜 기계적인 리액션을 유지해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 사람이랑 헤어지고 뭐 먹지, 저번에 그거 맛있었지. 하며 나만의 대화를 가진다.


질문이 없는 관계는 깊어질래야 깊어질 수가 없다.


이런 사람과 만남을 끝내고 나면 어딘지 기가 쪽 빨린다. 때론 시간낭비를 했다는 기분이 들어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질문을 못 하는 이유는 경청을 못해서 그렇다고 본다. 들은 게 없으니 궁금한 것이 생길리가 있겠는가. 혹은 들었다 해도 자기 생각이 너무 많은 경우다.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곧이 곧대로 들어야하는데 그걸 자기 관점에서 들어버리니 저 사람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 어제 인왕산 갔다왔어!"


이렇게 얘기했는데 자기 관점으로 들어버리는 사람은 질문 대신 이렇게 답한다.


"인왕산 올라가기 생각보다 쉽지. 나는 지리산 다녀왔는데 거기는~"


정말 말문이 막힌다. 어쩌라는 건가.


아니, 나는 인왕산을 갔다왔다고.


볼멘 소리로 얘기하면 결국 분위기는 싸해진다.


인왕산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자기가 다녀온 경험을 기반으로 상대방의 등산 경험을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정해진 답이 있는 생각의 길에 상대방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틈은 당연히 없다.


경청의 기본 능력은 '나 제외시키기‘가 아닐까.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이기 때문에 모든 것에 내가 살아있을 수 밖에 없다. 나의 경험, 관점, 생각, 느낌, 판단 등등이 무의식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말에는 상대방의 '내'가 살아있다. 그걸 지켜줘야 한다.


말의 주체를 먼저 수용해준 다음에 대화를 통해 조금씩 서로 다른 '나'를 들이밀어야 건강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너는 왜 인왕산을 갔는지, 평소에 등산을 좋아하는지, 누구랑 갔는지, 갔다와서는 어땠는지...


나를 뺀다면 저 한 문장만 듣고도 질문 거리가 진짜 많다. 이 다음에 내 지리산 자랑을 하고 지리산을 추천해줘도 늦지 않다.


나를 빼는게 정 어렵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자. 그러면 모든게 궁금하다.


지금 글을 쓰면서 잠깐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더니 아스팔트가 왜 생겼는지 궁금해졌다. 사람을 넘어 사물에도 궁금증이 생기니 살아갈 힘도 조금은 생긴다.


물론 사회에 치이고 또 여기저기서 많은 걸 경험한 우리네 어른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조금의 훈련은 필요하지만


혼자 살 거 아니면 해보길 추천한다.




A가 드디어 나에게 질문을 건넨다.

"이제 갈까?"


아, 질문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당장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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