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앉아있는 한 수녀님을 보았다. 만원 지하철 까지는 아니어도 어느정도 승객들로 붐비던 지하철이었다.
수녀님 양 옆으로는 여자 승객이 앉아있었는데 한 명은 다리를 꼰 채 도도하게 앉아있었고 한 명은 연신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다리를 꼰 여자 앞에 섰다.
약간의 원칙주의가 있는 나는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있는 사람을 잘 못 본다. 배려 없는 행동이 참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사람 앞에 서게 되면 일부러 몸을 가까이 밀착한다. 그 꼬인 발이 내 바지에 닿기라도 해봐라 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내 발광의 동기가 되어준다면 언제든 기꺼이 응해주겠다 하는 심보인 것이다.
열에 여덟 정도는 이렇게 부러 가까이 다가가면 눈치를 보며 꼰 다리를 푼다. 그러면 내 심보도 살며시 사그라들어 다시 간격을 띄곤 한다.
서로 조금씩 배려하는 사회면 좋겠다는 올바른 생각이지만 내 마음을 심보라 표현한 것은 수동 공격적인 행동 때문이다. 마음을 쓰는 속바탕이 예쁘진 않다. 네가 날 불편하게 했으니 나도 널 불편하게 할거야 라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취하는 행동이 꽤나 원초적이란 기분이 든다.
너도 그러면서 무슨 배려하는 사회를 꿈꾸냐 하며 조그맣게 한숨을 내쉰다. 성인답지 못한 마음과 행동에 씁쓸함이 밀려온다. 앞으로 치졸하게 행동하지 말자 다짐했는데 오늘도 기어코 다리를 꼰 사람 앞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내 무언의 압박을 느낀 여자가 슬며시 다리를 풀어 공간을 확보해주었다. 이윽고 나도 짐짓 모르는 척 뒤로 빠져 주었다.
에이! 이 유치한 사람아! 똑같이 행동하면 어떡하냐!
곰방대를 물고 있는 유교 할아버지가 되어 스스로를 꾸짖고 있는데 앉아계신 수녀님이 눈에 들어왔다. 곱게 다린 수녀복과 길게 늘어선 베일, 그리고 꼿꼿이 허리를 핀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저 단정한 수녀님을 보고 좀 본받아라!
유교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들으며 반성했다. 저 작은 몸으로 어떻게 성자의 길을 걸어가리라 다짐했을까, 이 세상에서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기 쉽지 않을텐데. 깊은 존경심이 올라왔다. 수녀님의 깊은 주름에서 넓디 넓은 바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 앞으론 좀 더 타인을 품고 세상을 품자.
꼬인 심보를 혼자 열심히 풀고 있었는데 수녀님 옆에서 꾸벅 꾸벅 졸던 여자가 자꾸 수녀님 쪽으로 넘어왔다. 세상 모르게 졸던 그녀는 이젠 대놓고 수녀님의 왜소한 어깨에 기대어 자기 시작했다.
새롭게 지게 된 십자가를 수녀님이 흘끗 쳐다봤다. 수녀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자애로운 수녀님, 그래도 저는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깨를 선뜻 빌려주는 편입니다.
나는 지하철에서 만난 작은 성인군자앞에 떳떳해지기 위해 행해온 선의를 속으로 발표했다.
사회에 찌든 그 피곤함에 동병상련이 되어서 그런지 그 배려가 크게 불편하진 않다. 단, 술냄새나 담배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면 내 심보대로 행하지만...
그나저나 저 여자분은 대체 어떤 하루를 보냈길래 저정도로 잘 수가 있을까? 아직 주말 낮인데!
이런 저런 고찰을 하고 있던 차에 수녀님의 인상이 확 찡그려지더니 어깨를 튕겨 졸고 있는 중생의 머리를 반대쪽으로 날려버렸다.
나는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끔뻑거렸다.
수녀님의 공격에도 그녀는 철옹성처럼 끄덕없었다. 다시 머리를 흔들며 졸더니 또 수녀님 어깨에 기댔다. 수녀님은 이번에 그녀의 머리를 핸드폰으로 밀어버렸다. 그녀가 눈을 뜨나 싶더니 다시 졸았다. 수녀님은 엉덩이를 앞으로 빼며 불편함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여자들의 기싸움은 이후 몇 번이고 반복되었고 누가 승자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내릴 역에 다 와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늘도 하나 더 깨닫는다. 우리는 종종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또 때로는 배려하고 사랑하고 화내고 싸우고 웃음짓는 그런 사람이다. 풀풀 풍기는 사람 냄새를 풍기면서 함께 살아간다. 그 냄새들이 어우러져 사골같은 깊은 철학의 맛이 난다.
사람 냄새, 참 구수하다~
아무쪼록 저는 그 마음 십분 이해합니다, 수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