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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Jun 16. 2022

[k의 기록] 7. 새로 탄생할 아이러니함들아

인생은 합성어 잔치

버스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어떤 벽에 붙어 있는 홍보 전단을 보았다. 거기에는 [신축 아파텔, x억 x 천] 이라고 적혀 있었다.


낯선 단어가 시신경을 통해 머리로 들어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아파텔이 뭐지? 오타인가?


멍해진 초점에 힘이 들어오면서 '아아,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합한 합성어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 이윽고 따라붙는 호기심.


고시텔 원룸텔, 아파텔 등등. 뒤에 텔이 붙으면 고급져져서 오피스텔을 갖다 쓰는 건가? 아니면 오피스텔이 뭐 사람으로 따지자면 다 퍼주는 스타일이라 아무데다 막 갖다 붙이는건가? 그도 아님 텔이 그 텔이 아닌가?


문득 오피스텔이 궁금해져서 쳐보니 '간단한 주거 시설을 갖춘 사무실'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피스 + 호텔이 합쳐진 말이 오피스텔이었다. 오피스텔 자체가 합성어였네? 거기에 또 다른 단어를 붙였구만.


신나게 생각해보니 중학생 시절, 국어 시간에 합성어에 대해 재미있게 배웠던 게 기억이 났다. 합성어도 찾아봐야지.


*합성어 : 실질 형태소가 결합하여 하나가 된 것.


둘 이상의 단어등이 합쳐진다는 것. 그래서 다른 의미까지 내포할 수 있다는 것. 가령, 어깨동무 혹은 들어가다 등등이 합성어 중 하나다. 언어의 이런 점이 참 흥미롭고 아름답다.


음,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의 합성어는 뭐가 있을까.


또 다른 호기심이 올라왔다.


나만의 형태로 합쳐져 버렸던 수많은 것들. 아주 많을 거라 짐작이 가지만 그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 어른이


많이들 쓰는 이 단어는 어린이와 어른이 합쳐진 것이다. 난 이 합성어가 참 마음이 든다.


열 다섯 살 땐 내가 세상을 다 아는 어른인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스무 두 살이 되었을 때도 고작 두 살 어린 스무 살 후배들이 꼬꼬마 애기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30대 어느지점이 되자 스스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라 여기며 몸사리고 살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이제 다 컸으니 나잇값좀 하라고 한다.


싫은데 싫은데 하면서 혓바닥을 낼름거려봤는데 사회적 기준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점점 작아지는 부모님의 뒷모습 좀 보라고 한다. 야, 엄마 무릎 연골 다 닳았대. 알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억지 반, 자의 반으로 남들처럼 어른 흉내를 내며 살고 있다. 그마저도 완벽하지 않아서 '어른이'가 되었다.


어른이는 나를 대변하기 좋은 단어이자 아이러니한 내 인생의 합성어이다.

 

내 인생에서 단어 뿐 아니라 각기 다른 문장이 합쳐진 것을 끌고와보면 더 아이러니해진다.


사람은 고유의 인격을 가진 개인적인 동물이면서 타인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늘 두 가지 마음의 문장이 충돌한다.


1) 혼자 있고 싶어.

2) 나랑 함께 해줘.


이 두 문장의 욕구는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다. 대표로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것들을 합쳐보면 대충 이런 마음의 문장이 탄생하겠다.


-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누군가는 내 옆에 딱 붙어서 같이 인생을 살아줬으면 좋겠다.

- 네가 나에 대해 100% 다 아는척 하는 것은 꼴보기 싫은데 나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은 포기하지 말아줄래.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지 않은가? 그게 사람이고 나도 그렇다.


또 뭐가 있을까.


내 생각의 물고를 트게 한 '아파텔'을 떠올려보니 또 다른 합성어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 단어를 위한 홍보문구는 이렇게 써 넣을 수 있겠다.


- 마음텔, x억 x천. 신축 같아보이는 원룸, 풀옵션 아님. 단 숨겨진 공간 엄청 많음. 비밀의 방만 찾으면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 있음. 인생역전의 기회! 지금 바로 투기하세요!


아, 이것도 추가해야겠다.


- 100평짜리 넓은 평수. 단, 특정 상황에서는 급격하게 1평으로 확 줄어드는 유동적인 공간.


반대로 다른 상황에서는 1000평, 10000평도 더 늘어날 수 있는 공간. 바로 내 마음 + 오피스텔의 '마음텔'이다.


내 마음텔에는 입주를 희망했고 살았던 사람도 꽤 많다. 살다가 계약만료로 나간 사람도 있고, 월세를 아직도 안 내서 쫓겨난 사람도 있고, 평생 재계약을 한 사람도 있다.


이런 마음텔의 또 다른 의미.


마음 + tell [(말, 글로) 알리다. 말하다.]

= 마음텔


요즘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쓰는 합성어는 이 '마음텔'인듯 하다. 글로도 말로도 내 마음을 알리는 것. 가장 중요한 이 단어를 그동안 잘 쓰지 못했었다는 게 놀랍다.


나는 요즘 나의 마음을 인정해주고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텔해주고 있다. 삐그덕 댈 때도 있지만뭐든 처음에만 낯설 뿐,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아파텔'이란 단어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정보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난 뒤 다시 본 그 합성어는 처음과는 달리 원래 세상에 존재했었던 것 마냥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게로 흡수되었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는 전혀 다른 단어들과 예기치 않은 문장들이 합쳐질 것이고, 그렇게 새로 탄생한 합성어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될 합성어와의 만남을 마음껏 기대해본다.  


일하기 싫은데 + 돈은 벌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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