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찾는 법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고
묵직한 먹먹함, 뒤이어 슬픔이 밀려왔다. 책 속 레퀴엠'부분이 전체 내용을 대체할 수 있단 사실에서 슬픔이 근원한다. 몇 장 안 되는 페이지에 인생이 다 담긴다면 지나치게 허무하지 않은가. 윌리의 열정, 행복, 고뇌가 그렇게 간단히 정리된다면 그의 삶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인간은 우주, 심해 등 광활함이 가늠 불가능한 대상을 볼 때 우울해진다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우울은 존재의 하찮음에서 생겨난다. 우리 모두 의미를 찾기에는 너무나 짧게 살다 가는 우주의 먼지다. 다들 이 사실을 모르거나 잊고 살거나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 것 같다.
무의미는 인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인생의 무상함 극복을 위해 오랜 기간 인류가 고민해 온 이유다. 대응책은 이성, 종교, 상상 등으로 사고의 체계를 만들고, 의미의 생성을 제도화, 구조화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어떤 지적, 사회적 활동이라도 출발점은 존재의 하찮음을 이겨내려는 대항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일즈맨이라는 직업도 마찬가지. 짧은 인생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꿈을 꾸고, 사람들이 그 꿈을 꾸게 만들어야 한다. 돈, 명예에 얽힌 욕망에서 출발, 하나가 충족되면 연장된 다른 욕망의 충족을 위해 쉼 없이 나아간다. 성공의 경험에서 작은 행복을 맛보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위안을 얻는다. 차츰 더 큰 성취에 경쟁적으로 몰두한다.
꿈을 꾸고, 또 팔아가며 회피한다 해도 진짜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윌리의 경우처럼 허망하게 마무리된다. 그는 대출을 다 갚았음에도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길을 선택하여 무의미의 수렁으로 빠지는 일은 더 두렵다. 끊임없이 욕망을 확장해 가는 삶의 자세,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 문제는 그가 이 점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사실이다.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려봤자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 나 스스로도 이런 정서에 젖는 시간이 가끔 있다. 점점 더 세상의 구조, 삶의 목적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마침 읽게 된 '세일즈맨의 죽음'은 생각 정리의 기회가 되었다. 핵심은 '보잘것없음의 자각'으로 요약되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먼지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이를 잘 내면화하며 살아야 허무함에 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생각에 우주의 먼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는 일이다.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을 늘 담담하게 의식하며 살아야 할 거라 믿는다. 이런 자세가 삶의 작은 굴곡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게 할 것이다. 하루의 소소한 순간들을 감사히 보낼 수 있게 하고,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시야를 넓게 만들어 우리를 무의미의 늪에서 구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