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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 Feb 05. 2020

네가 있는 곳에 내가 없을 때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을 읽고

9.11 사태의 날을 기억한다. 거대 빌딩이 불기둥 며 동강이 나던 날, 어딜 가도 그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다. 지구 반대편 일이었지만 누구나 이에 대해 떠들던 때, 초현실적 이미지는 어느 순간 보지 않아도 보이게 되었다. 당황과 공포를 넘어, 현실-허구 경계를 따지려마음 상태가 이어졌다. 빌딩에 갇혀 생을 포기하거나,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하던 들에 관심을 둘 수는 없었는데, 벌어진 사건의 불가해성 탓에 자신을 이해시키는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 못한 것은 당시 지척에 있던 사람들에게 결정적 분지(分枝)가 일어나고 있었단 사실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소년이 아버지를 잃고, 부모가 아들을 잃은 때였다. 충돌 직후 빌딩 안 수분은 짧았지만, 교류 불가능한 시공의 분할이 일어나기에 충분했다. 밖으로 전하려던 부재중 메시지는 오히려 이 분할이 얼마나 공고한가를 말해주는 표지일 뿐이었다.


뻗어 나온 시간이 웬만큼 흐르고 난 뒤, 남은 자들이 하게 된 일은 편지 쓰기였다. 전하지 못해도 어떻게든 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네가 있는 곳에 나도 있고 싶다"라고. 절절한 그리움이 넘쳐나지만, 한밤중에 울음을 터뜨리고, 애절함이 일상을 지배하지만, 이들은 보낼 수 없는 편지를 계속해서 쓴다. 아버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아들을 그리며 빈 공책을 채워간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 속 빈칸은, 사고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사연이 있었고, 안타깝게도 이제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왜 이들의 편지가 닿을 수 없는지 질문한다. 대상과의 거리가 멀어서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들이 감지하는 잃어버린 사람과의 거리는 '믿을 수 없게 가깝고, ' 자신이 내는 소리는 '엄청나게 시끄럽다.' 그럼 왜 도달할 수 없는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제아무리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이라도 답할 수 없다.  


어쩌면 잘못된 물음을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라도. 가슴 찢어지는 비극 앞에 무력감을 느끼는 우리들, 만약 그런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 있다면 우선 그것을 하자. 과학을 하고 발명을 하자. 진지한 의문을 품고 진실의 탐구에 나서자. 우리만의 방식으로 추억을 되살리자. 편지가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렇다고 해도, 왜를 묻는 대신에, 그래도 어디론가 메시지를 던지는 일을 멈추지 말자. 미술을 하고, 책에 줄을 긋고, 그리운 사람의 조각상을 만들자.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면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자. 열쇠를 가진 사람은 자물쇠 가진 사람을 찾고,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가 있는 사람을 만나 서로 위로하자. 그저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몰랐다는 이유로 평생 가져가야 할 슬픔을 얻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마지막을 선택할 수 없다면, 그냥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여기고 살자. 눈앞의 사람에게 바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로 지금 사랑한다 말하자.


분지점으로 습관처럼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살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 소년의 상상 속 추락하던 사람이 다시 상승해 올라가던 장면이 아직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판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란 명제가 수많은 가슴 아픈 사연의 원인이다. 우리는 세상의 이 안타까운 원리에 굴복할 수밖에 없고, 남은 사람이 감당해야  고통은 남은 생의 길이에 비례할 것이다. 소설을 읽은 나는, 잃어버리고 말았던 소중한 사람과의 거리에 대해 묻는다, '이렇게나 가까이 느껴지는, 네가 있는 곳에 왜 나는 없는가.' 그리고 답한다, '우리가 가까이 있으니 그럼에도 계속해서 편지를 쓰겠다고, 어떻게든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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