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받아 왔더니 쏟아버렸다. 책상 위로 커피잔이 넘어졌고, 종이들, 서류와 빈 A4들이 갈색 액체로 흥건해졌다. 허겁지겁 키친타월을 한 손 가득 뽑아 와 응급처치를 한다. 검은 물바다가 된 책상 위를 훔쳐낸다. 다행히도 노트북엔 커피가 튀지 않았다. 키보드, 화면, 다 멀쩡하다. 정말 다행. 검은 물바다 책상 위로 시선을 다시 돌리고, 물기를 훔쳐내기 시작한다. 프린트 한지 얼마 안 된 종이 묶음이 다 젖었다. 축축하게 숨이 죽었다.
그렇게 20~30분이 지나니 습기는 모두 가신 듯. 남은 것은 종위 위 황토색 얼룩이다. 젖었던 부분이 말라서 뻣뻣하게 변했다. 이면지나, 연습장으로 용도를 바꾸어야 하겠다. 그리고 향이 남았다. 조금 진했던 커피였기 때문인지 더 깊게 남은 것 같다. 책상을 중심으로 반경 1~2미터의 원을 형성한 냄새 분자들, 나를 둘러싸고 있다.
마음 속 변화는 대략 이랬다. 엎지르기 바로 직전, 곧 벌어질 사태를 파악했으나, 아직 일어나기 전. 커피에 대해 느끼는 아까움. 엎질러진 시점에서 눈앞의 처참한 광경을 본다. 책상과 종이들이 더러워짐에 생겨난 '큰일이다!' 하는 다급함. 그 조금 후엔 노트북은 무사한지 궁금해지고, 무사함에 하게 되는 안심. 종이로 닦아내면서, 칠칠치 못한 자신에 대해 드는 자책감. 모든 게 정리되고, '잘 대처했다, 이 정도라 다행이네' 하며 자신에 대해 하는 격려. 또 합리적 상황 인식. 정말 커피 쏟은 건 아무 일도 아니다. 커피향도 나쁘지 않네, 하는 긍정적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