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깊은 적적한 삼경인데 오는 비가 오동잎을 흩날리는구나 적막한 빈방 안에 앉으나 누우나 두루 생각하다가 생각에 빠져 근심이 드는구나 근심이 짙어지니 가슴속에 붙는 불은 올해 같은 억수장마 비로도 끌 수가 전혀 없구나
세 개의 산봉우리는 구름에 잘려 저 하늘밖에 있고 위수는 굽이쳐 백로주를 가로지르는구나 (이백의 등금릉봉황대 7언율시를 끌어다 노래했슴)
심양강을 그저 건너가리 가련한 백락천의 비파 뜯는 소리가 그쳤으니 달은 떨어져 까마귀 우는 깊은 밤 외로운 나루터기에 배를 매니 한적한 절에서 치는 쇠북소리가 둥~ 하고 뱃머리에 떨어지는구나 (백락천의 비파행을 끌어다가 노래했슴)
남도잡가에는 육자배기, 보렴, 흥타령, 개고리타령, 춘향전에 등장하는 농부가 등이 있는데 40년 전에 늘 들었었다. 그중 들을 때마다 지금까지도 울면서 들어온 것이 바로 이화중선의 육자배기이다.
위의 이화중선이 부른 육자배기와 다른 버전의 진양조 육자배기들도 있는데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연당호 밝은 달 아래 채련 하는 아이더라~ 십리 장강 배를 띄우고 물결이 곱다 하지 말어라 그 물에 잠든 용이 깨고 보면은 풍파 있다 염려하것구나 .
뜻은 이러하다.
연당 호수의 밝은 달 아래 연꽃을 따는 아이들아~ 십리 장강(양자강)에 배를 띄우고서 물결이 곱구나 하지 말어라. 너희들 떠드는 소리에 그 물속에서 잠든 용이 깨어 난리 치면 그제서야 풍파가 있다고들 하지를 말어라
앞의 두 진양조의 육자배기와는 좀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황진이가 읊었다는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할 때~ 쉬어간들 어떠하리" 이 시조에서 기원한 듯 보이지만, 그러나 시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요즘 말로 비유하자면 그저 그렇고 그런 시장통 장똘뱅이 수준의 육자배기도 가사도 있다.
산이로구나 아 헤~ (도입부)
내 정은 청산이요 (6-1) 님의 정은 녹수로구나 (6-2) 공산명월아 (6-3)
말 물어보자 (6-4) 님 그리워 죽은 이가 (6-5)
몇이나 있더냐 (6-6)
그야말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이 버전들은 일제강점기 한참 후에, 너도나도, 시에 능하지 않은 소리꾼들이 마구잡이로 갖다 붙인,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육자배기 장똘뱅이 버전 되시겠다.
여러 버전의 육자배기 중 꽃피네올리브는 산조처럼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넘어가는 이화중선의 육자배기를 가장 즐겨 듣고, 즐겨 불렀다. 가사와 가락이 너무나 슬퍼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그만 부르라고 하셨기에 수년간 부르지도 듣지도 않았었다.
남도잡가 육자배기는 여러 부류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진양에서 자진모리 육자배기로 넘어가는데 산조의 휘모리 부분에 해당하는 가락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개고리타령이나 흥타령(흥그레타령)을 이어 노래하여 끝을 낸다. 산조의 휘모리를 육자배기에서는 개고리타령이나 흥타령을 빌어다 휘모리장단으로 끝을 내는 것이다.
솔직히 육자배기에 이어 붙여 부르는 개고리타령이나 흥타령은 수준이 육자배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육자배기를 듣다 보면 노래를 하는 것인지 흐느끼는 것인지 모를 그런 울음이 내게 늘 있었다. 이제 옛날처럼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그러나 가슴을 쥐어뜯는 이화중선의 남도잡가 육자배기는 내게 있어 슬픔이 승화되고, 뒤돌아보게 하고, 지금도 과거를 살게 하는 버거운 노래이다. 육자배기 가사가 너무 슬퍼서 지금도 감당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가슴 저 밑에서 복받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