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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r 18. 2018

<게으름에 대한 찬양> - 과시적 생산의 시대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고

허영에서 비롯된 과시는 인간의 본성이다. 과시를 통해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지으며 돋보이고 싶은 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 중 하나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허영에 관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허영은 사람의 마음에 너무나 깊이 뿌리를 박고 있어, 병사나 제자나 요리사나 인부도 자기 자랑을 해 그들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을 가질 수 있다. 철학자들도 자기를 우러러보는 사람이 있기를 원한다. 또 무엇을 반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잘 썼다는 영광을 얻기를 원하며, 그것을 읽는 자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아마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며, 또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이들도...
- 파스칼 <팡세> 中 - 


역사적으로 인간의 주된 과시 수단은 소비였다. '누가 더 과감히 낭비' 할 수 있는지가 신분의 척도였다. 예를 들어, 고대 원시인들은 누가 더 반짝거리는 조개껍질을 갖고 있는지, 더 많은 하인과 가축을 거느리고 있는지 등으로 자신의 지위를 과시했다. 중세와 근대에 살았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더 많은 토지를 가지고, 수입산 향신료를 쓰고, 어떤 옷을 입는지, 마당에 잔디를 얼마큼 심는지 등을 통해 자신의 재력을 과시했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 특성은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용가치'에 주목해 재화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들이 소비하는 것은 '기호가치'인데, 미디어와 광고는 상위의 기호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지핀다. 명품백을 드는 여성이나 외제차를 타는 남성의 심리에는, 허영을 충족하기 위한 과시적 소비가 내재돼있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역설적인 현상은, '베블런 효과'라는 이름으로 경제학에서 논의된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특징은, 과시의 수단이 소비를 넘어 생산에까지 전이됐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주목할만한 변화인데, 생산이 과시의 수단으로 사용된 시기는 인류 역사상 전후무후한 듯하다. 분주히 생산하는 사람이 이렇게 각광받던 시대는 없었다. 전통적으로 노동은 노예들의 몫이었고, 상류층은 노예들의 노동력을 통해 얻은 생산물을 향유하며 여가를 즐겼다. 역사가 기록한 1% 의 영웅들이 위대한 변화의 궤적을 남길 때, 99% 평범한 사람들은 상류층을 위해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과시적 생산의 시대다. 현대사회에서 명품 로고가 붙은 제품을 사서 뽐내는 것은 다소 구식인 방식이 돼버렸다. 진정하고도 교묘한 과시는 생산을 통해 이루어진다. 현대인은 과시적 생산을 하며 자신이 얼마나 능력 있고, 바쁘며, 유용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려 한다. 일은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한 개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지위가 돼버렸다. 게으름은 죄가 돼버렸다. 현대인은 일을 하지 않을 때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잠시도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여가를 위한 시간조차 생산을 위한 준비태세 일 뿐, 완벽하게 스위치를 끄기 어렵다. 

한편, 사람은 탄생과 동시에 죽음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한다. 어제-오늘-내일의 역에서 승하차를 반복하고, 역들 간의 구분이 희미해지며 열차 밖 풍경이 단조로워질 때쯤, 언젠가 열차는 죽음의 종착역에서 멈출 것이다. 잘 사는 인생이란, 매일 아침 내리는 오늘의 역에서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고, 환희를 경험하며, 충만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과시적 생산은 열차에 가속을 붙이고 질주하게 만든다. 열차는 죽음을 향해 빠르게 달리고, 그 과정에서 스쳐 지나간 소중한 것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과시적 생산은 본디 자살과 다를 바 없다.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노동이 미덕인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사색과 같은 무용한 것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러셀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미래에도 유효하다. 과연 과학기술의 발달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더 나은 생활을 선물할까? 허영이라는 인간의 본성 및 과시적 생산의 부상을 고려하면, 이러한 생각은 순진해 보인다. 사람들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기계처럼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아-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닌데.


https://www.youtube.com/watch?v=IyCH2PEhuPg&t=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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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발견

일이란 무엇인가?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지표면 혹은 지표면 가까이 놓인 물질을 다른 물질과 자리를 바꿔 놓는 일이다. 또 하나는 타인들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시키는 일이다. 


4시간 노동으로 생활필수품과 기초 편의재를 확보하는 한편, 남는 시간은 스스로 알아서 적절한 곳에 사용하도록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명하게 더 많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 교육의 목표에 여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데 필요한 안목을 제공하는 항목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필수적이다. 


여가가 많아지면 상당한 지적 활동과 관심사들을 보유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루해하기 십상이다. 여가를 가진 인구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교육받은 인구이며, 또한 그 교육은 직접적 유용성을 가진 과학, 기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쁨도 목표로 했음이 틀림없다. 


경제적 두려움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밤에는 꿈까지 지배한다. 따라서 일할 땐 초조하고 여가를 즐길 땐 개운치 않다. 


어는 시대든 인생은 고통으로 차 있었지만 앞선 두 세기보다 우리 시대의 인생이 더 고통스럽다.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면 인간은 하찮아지고, 자기기만에 빠지게 되고, 엄청난 집단 신화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적인 완화책은 장기적인 고통의 근원만 증가시키는 꼴이다. 


무용한 지식은 살구의 역사처럼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서까지 개인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한 지식의 추구를 가능케 해주는 것은 바로 ‘사색하는 습관’인데 여기에는 게으름이 요구된다. 사람은 게으를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고, 장난도 치고 싶어 지고, 스스로가 선택한 건설적이고 만족스러운 활동들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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