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8년 상반기는 내 인생에서 무척 특별한 시기로 남을 것이다. 나는 바빴던 홍콩에서의 직장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잘 나가는 금융인이 되어 금의환향할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백수가 된 채. 하지만 이 시기는 단연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로 각인될 것 같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소소한 일들 - 한산한 평일 오후에 미술관 가기, 대형서점에서 하루 종일 책 보기, 알람 꺼놓고 월요일에 늦잠 자기, 모교 놀러 가기, 죄책감 느끼지 않고 빈둥거리기 등 - 을 실컷 하며 자유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면 퇴사 후 가장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여행일 텐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행하면서 나를 비워내는 것만큼, 사회생활에서 쌓인 독을 빼기에 효과적인 것이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식히면서 다음 여행지를 물색하던 내게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녹음에 둘러싸인 기차와 고풍스러운 다리. 검색해보니 스리랑카였고, 이 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 여행지 중 하나로 꼽힌단다. 스리랑카 기차여행의 백미는 자연경관과 느림이다. 세계 2위의 홍차 생산 국가다운 광활한 차밭과, 꼬불꼬불 철로를 따라 느리게 운행되는 기차는 스리랑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 나는 이 기차 사진에 끌려, 스리랑카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스리랑카에서 고대하던 기차를 탔다. 최대 시속 300km가 넘고 빠른 인터넷을 제공하는 KTX에 익숙해진 내게, 시속 50km보다 느리고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는 스리랑카 기차를 탄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나는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오감을 온전히 활용해 주변을 관찰했다. 창 밖으로 떨어지던 은색의 빗방울, 싱그러운 풀내음, 덜컹거리던 기차소리, 잡상인이 팔던 싸구려 간식, 옆에 앉은 현지인들과 몸을 부대낀 채 나누던 대화. 그것은 분명 내가 KTX를 탈 때는 발견할 수 없었던 종류의 행복이었다.
10시간 넘게 기차를 타면서 나는 경주마처럼 살아온 지난날을 떠올렸다. 온갖 목표 - 입시, 취업 등등 - 를 달성하기 위해, 언제나 달팽이 집처럼 바쁨을 등에 짊어지고 살았던 나.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무심코 지나친, 혹은 상실한 것들.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린 기분이 들어 마음이 울적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살았던 걸까? 결국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인생이란 기차여행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매일 기차에 탑승한다. 기차는 어제-오늘-내일의 역에서 승하차를 반복하고, 역들 간의 구분이 희미해지며 열차 밖 풍경이 단조로워질 때쯤, 언젠가 열차는 죽음의 종착역에서 멈출 것이다. 잘 사는 인생이란, 매일 아침 내리는 오늘의 역에서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고, 환희를 경험하며, 충만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바쁨은 열차에 가속을 붙이고 질주하게 만든다. 열차는 죽음을 향해 빠르게 달리고, 그 과정에서 지나간 소중한 것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바쁨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은 바쁨을 짊어지고 사는 달팽이들을 위한 글이다. 무엇이 현대인을 이토록 바쁘게 하는가? 바쁨은 어떻게 탄생했고, 왜 강제적 속성을 지니는가? 인공지능 시대에 바쁨의 암울한 미래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독자들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바쁨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은 이런 의도로 쓰였다. 이 글이 바쁨을 이해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얼마 전 <바쁨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원고로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됐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면, 7월에 책이 출간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울러 책을 소개하는 채널 '21세기 살롱' 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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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샘플
https://www.youtube.com/watch?v=zJMbuFp0-i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