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버린 남자

소외된 인간 - 프란츠 카프카 <변신>

소외된 인간

1999년, 영국 BBC는 전 세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 사상가를 묻는 설문을 진행했다. 아인슈타인, 다윈, 칸트, 니체 등 쟁쟁한 사상가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른 인물은 공산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다진 마르크스다. 마르크스가 위대한 사상가로 뽑힌 이유는 그가 신랄하게 비판한 자본주의의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의 수가 그만큼 적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내의 경우, 역사적 상흔으로 인해 유독 마르크스의 사상이 죄악시되고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성적으로 살펴볼 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 및 소수 부르주아 계급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다수 프롤레타리아가 중심이 된 혁명을 촉구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존엄한 가치를 지닌 인간이 시장에서 팔릴 때만 유용성을 증명하는 상품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들은 일자리를 찾는 한에서만 생존하며, 자신들의 노동이 자본을 증식시키는 한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계급이다. 자신을 한 조각씩 팔아야 하는 이 노동자들은 다른 여느 판매품과 같은 상품이며, 그래서 마찬가지로 경쟁의 모든 부침, 시장의 모든 변동에 내맡겨져 있다.”


인간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는 연봉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상품이 되고, 노동 시장에서 팔리기 위해 저마다 열심히 자신을 홍보한다. 경제적 이윤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자, 예술가 심지어 종교인마저 모두 상인의 탈을 쓴 채 본인을 팔아야 한다. 게다가 다수의 노동자는 변덕스러운 고용시장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긴 채,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일에 송두리째 바쳐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때, 한 개인의 주체성 및 인간성은 빠르게 용해되고 그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수동적인 기계로 변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가족이 금전적인 이해관계로 얽매인 인간미 없는 조직으로 변질될 것을 내다보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가족관계조차 감상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순전히 금전관계로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우울한 진단대로, 경제적 동기로 인해 가족이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며 종국에는 해체되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 돈 때문에 이혼하고 부모와 자식이 갈라서는 일은 이제 현대사회에서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부모를 살해한 사건 정도는 되어야 사회면 기사를 장식하고 대중의 관심을 얻을 뿐이다. 이처럼 팽배한 배금주의 하에, 돈은 가족이니 사랑이니 하는 감상적이고 숭고한 관계를 무력화시키며 인간을 수단화하고 소외시킨다.


마르크스의 처지는 마치 신종 바이러스를 처음 접한 의사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는 바이러스의 증상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으나, 이것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한 공산주의는 명백한 한계를 보였다. 사유재산의 철폐와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꿈꿨던 그의 이상은 성공적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추종자들은 독재자로 변질되어 이념전쟁의 패자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의 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비판한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그중에서 '인간 소외'가 주목할 만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 행해지는 네 가지 유형의 인간 소외를 제시했는데, 자연 사회로부터의 소외, 자기 생산 활동으로부터의 소외, 종(種)적 존재로서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타자로부터의 소외이다. 빈부 격차 확대, 중산층 소멸, 포퓰리즘, 일자리 붕괴로 인해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으며 인간 소외 현상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하고 더 나은 사회로 전진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변신>은 인간소외를 다룬 작품이다. 집이라는 따스한 공간과 가족이라는 정다운 관계가, 경제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성원에게 얼마나 냉혹하고 무정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검은색의 기이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는데, 실로 그렇다. <변신>은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지만, 인간 소외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은 훌륭한 작품이다.


<변신> 소개

책의 도입부는 가히 충격적이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흉측스러운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했다. 딱딱한 각질로 된 등을 대고 누워 있는 그는 고개를 조금만 쳐들어도 갈색의 볼록한 마디마디로 나누어진 배를 볼 수 있었다. 그 배 위에는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떨어질 것처럼 이불의 한 모퉁이가 가까스로 걸려 있었다. 다른 부분에 비해 비참하게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이 그의 눈앞에서 속절없이 간들거렸다.


그레고르는 자신에게 생긴 급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회사에 제 때 출근하지 못함을 염려한다. 흉측한 벌레로 변한 상황에서도 그레고르가 출근 걱정을 하는 이유는 그가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무단결근한 그레고르를 힐책하기 위해 상사가 집에 찾아오고, 그와 그레고르의 가족은 벌레로 변한 그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상사는 허둥지둥 도망치듯 떠나고,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심지어 아버지는 그레고르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방 안으로 밀쳐내고 격리시켜 버린다.


혼자 어두운 방 안에 남겨진 그레고르. 충격적인 상황에서 정작 가장 태연한 것은 정작 벌레로 변신한 본인인 듯하다. 그는 방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며 벌레가 된 몸뚱이에 서서히 적응하는데, 자신을 '끔찍한 벌레 보듯' 대하는 가족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특히, 사랑하는 누이동생이 자신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고 그레고르는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가족들이 그레고르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부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레고르는 헌신적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살아온 모범적인 아들이자 듬직한 오빠였기 때문이다. 그는 열심히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었고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경제력을 상실하자 가족들은 그의 존재를 무시하고 외면한다.


가족들은 어떠한 경제활동도 하지 못하고 밥이나 축내는 벌레인 그레고르가 못마땅하다. 그들은 그레고르의 흔적을 말소함으로써, 자신들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차단하려 한다. 그레고르가 인간이었을 때 쓰던 방을 말끔히 치워버리는 것은 결국 그의 존재를 잊어버리겠다는 뜻이다. 그레고르는 인간이었던 증거를 상실하는 것에 분개한다.


그레고르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자 살림이 어려워지고 가족들은 분주히 경제활동을 한다. 그러다 하숙을 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그레고르의 존재를 발견하고 불만을 표하면서, 가족들과 그레고르 사이 갈등은 폭발한다. 놀라운 것은 그동안 그레고르를 냉대하던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으리라 짐작됐던 누이동생이, 가장 적극적으로 그레고르의 추방에 앞장선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레고르의 존재를 부정하며, 비인간적인 처사를 합리화한다.


"내쫓아야 해요." 누이동생이 외쳤다. "그러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것이 그레고르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이제껏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던 것이 우리 자신의 불행이었어요. 어째서 저것이 그레고르란 말이에요? 만일 정말 그레고르라면 사람이 저런 동물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자기 스스로 나가 버렸을 거예요


가족들에게 비참하게 버림받은 그레고르.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며 살았던 그에게는 오직 외로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숨을 거두기 직전, 그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을 느끼며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그레고르의 죽음을 확인한 가족들은 마치 앓던 이를 뺀 것 같은 통쾌함을 느낀다. 이들은 마치 그레고르가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말끔히 그의 죽음을 망각한 채 소풍을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가족들의 앞에는 환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맺음말

프란츠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불안의 원천이었다. 자수성가한 상인이었던 카프카의 아버지는 경제력을 앞세워 집안에서 엄격한 폭군으로 군림하며 그를 옭아맸다. 세속적 성공보다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던 감상적인 카프카는, 사업수완이 좋았던 아버지의 눈에 언제나 답답하고 부족한 아들이었다. <변신>은 입신양명을 바라던 아버지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 채, 가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카프카의 울분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현대사회에서 인간 소외는 결코 무력과 강제력을 통해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 가족, 친구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에 의해 은밀하고도 서서히 연출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인간소외에 대해 고민해보고, 본인이 소외된 인간인 지 여부를 스스로 자문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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