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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ug 30. 2020

판사는 신이 아니다

영화 <칠드런 액트>, 도서 <어떤 양형 이유> 를 보고

내가 판사라는 직업에 동경심을 갖게 된 계기는 수년 전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을 때였다. 현직 판사인 작가는 자신이 남한테 피해 안 끼치고 최대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개인주의자임을 밝히며, 이 책을 통해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고 개인주의를 죄악시하는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작가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는데 나는 여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는 작가와 본인이 지닌 기질의 유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한편, '남의 눈치 덜 보고' 개인주의자로 살아갈 수 있는 그의 직업적 특성이 너무 부러웠다. 조직생활을 중시하고 갑을 문화가 팽배한 대부분의 한국 직장인들에게 개인주의는 사치이다. 


판사라는 직업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위압감을 주는 법복을 입은 사람이 법정에 들어서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경의를 표한다. 판사는 재판 내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신중히 검사와 변호사의 말을 듣는다. 마침내 그가 판결을 내리고 피고와 원고는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다. 판사가 내린 판결로 인해 적게는 한 사람, 많게는 수 천, 수 만 명의 삶이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판사는 절대적인 심판자이다. 법정에서 그는 신이다. 물론 이것은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 일 뿐이다. 나는 실제로 법정에 가서 판사를 본 적이 없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지인들도 전부 변호사이기 때문에, 아쉽게도 판사 개인의 삶을 관찰할 기회를 아직 갖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영화 <칠드런 액트>와 도서 <어떤 양형 이유>는 흥미로운 콘텐츠이다. 각각의 작품은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한 개인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칠드런 액트>의 주인공 피오나는 세련되고 우아한 여자 판사이지만 남편과의 불화로 골치가 아프다. 어느 날 그녀는 종교적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는 한 소년의 재판을 맡게 되고, 그의 목숨을 살리는 판결을 내린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소년은 피오나의 인간적인 면모에 감화되어 그녀를 순수하게 동경한다. 피오나는 법정에서 벌어진 일을 사생활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소년과 분명히 선을 긋지만, 그는 피오나의 삶에 시나브로 스며든다. 방황하는 소년에게 피오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가올 삶과 사랑을 떠올려 봐"


한편, <어떤 양형 이유>의 작가 박주영은 판사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가 법정에서 일하며 느낀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글에는 글쓴이의 우주가 언어라는 매개체로 표현되어 있는 법이다. 박주영 작가의 글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인간미 넘치는 사람인 지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박주영 작가가 법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설 때면, 그는 때때로 (그의 본성과는 다른) 냉철한 판결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법과 정의, 그리고 사랑에 대해 박주영 작가가 남긴 기록을 살펴보면, 직업인으로서의 판사와 한 개인으로서 느끼는 역할 갈등과 번민이 정말이지 구구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판사도 결국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던 것이다!


<어떤 양형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나는 이것을 보고 한때 내가 (개인주의를 최대한으로 실현할 수 있는) 판사라는 직업에 대해 느꼈던 부러움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 지를 느꼈다. 모든 호모 라보란스는 (노동하는 인간)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 이는 판사도 예외가 아니다.


"수돗가마다 기적은 넘쳐나지만, 그 기적의 수돗물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때, 호각소리에 맞춰 꽃 피고 진 시절처럼 판사와 재판마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여길 때, 간단한 의사표현마저 판사직을 걸고 비장하게 하는 젊은 법관을 볼 때, 내 선의를 이용해 동룡 이간질하는 사람을 볼 때, 날은 새어오는데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판결을 쓸 때, 타인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고통만 구구절절 늘어놓는 당사자를 볼 때, 누군가의 천국이 공고해질수록 누군가의 삶은 지옥이 되어갈 때, 누군가의 삶은 지옥이 되어가는데 누군가의 천국은 더욱 공고해질 때, 그런 결과에 부역해야 할 때, 피레네 산맥 저쪽의 정의가 이쪽에선 불의가 될 대, 우리는 산맥 이쪽 불의의 영토에 있을 때, 힘없는 정의마저 사라지고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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