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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n 20. 2021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영화 <7번째 내가 죽던 날>을 보고

스포일러 주의


10대 소녀 샘은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깨어 하루를 시작한다. 가족들에게 무심함 아침 인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 학교를 가고 수업을 듣는 샘. 그녀는 오늘 밤 있을 파티에서 남자 친구와 첫날밤을 보낼 생각에 걱정 반 기대 반이다. 파티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샘은 남자 친구의 만취와 다른 친구와의 불화로 인해 언짢은 기분을 느낀다. 왁자지껄 떠들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 음주운전을 하던 샘과 친구들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의식을 잃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눈을 떠보니 오늘 아침이 시작되고 샘은 똑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아무리 용을 써도 매일이 반복되고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달은 샘. 그녀는 보다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삶에 작은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건네고, 때로는 겁 없이 일탈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샘의 마지막 하루는 한 층 풍부해진다. 


영화 속 수업시간에는 시시포스가 언급된다. 이 장면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보면, 감독은 아마 관객들에게 시시포스 신화가 주는 메시지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교활하고 영리한 시시포스는 신들의 미움을 산 대가로 끔찍한 벌을 받는다. 바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말이다. 시시포스가 산 정상에 도착하면 바위는 굴러 떨어지고 그는 산 아래로 내려가 다시금 힘겹게 바위를 들어 올려야 한다. 시시포스는 이 지겹고 고된 노동을 평생 반복해야 한다. 사실 우리의 삶도 시시포스의 쳇바퀴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이따금씩 "만약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어떨까"라는 공상을 하는 편이다. 오늘 죽으면 죽기전에 누구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 좋을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하루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일 테다. 함께 쌓은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진심을 나누는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마지막 하루다. 그러나 죽음은 보통 예고하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여건이 허락하는 한, 매일 최대한 풍부한 감정을 느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애쓰는 것이 최선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후 나는 "재미"를 꽤나 중요한 삶의 우선순위로 두게 되었다. 재미의 사전적 정의는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인데, 내 기준에 재미는 쾌락보다는 훨씬 소소하고 귀엽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 하는 편이다. 재미있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일을 함께 하면 금상 첨화이지만, 재미없는 사람들과 있을 바에는 혼자 있는 것이 훨씬 좋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재미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사람들을 만나 재미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다. 


영화를 본 날의 하루를 돌아봤다. 지방에 살고 계신 부모님과 전날 밤 단란한 시간을 보낸 나는 아침에 개운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점심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 친구를 만난 이후, 집으로 돌아와 에어컨을 켜고 낮잠을 잤다. 저녁에는 회를 시켜서 화이트 와인과 곁들여 먹으면서 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본 후에는 (평소 내가 재밌다고 여기는)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서 음악을 들었다. 대단할 것 없는 보통의 하루였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이 정도면 마지막 하루로 합격점 이리라.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부터 정상을 향해 이제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그토록 돌덩이에 바싹 닿은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은 이미 돌 그 자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 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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