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의 중요성
#14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는 일단 문제를 명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돈과 관련한 각종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자라면 일단 다음의 명제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모두 책의 전반부에서 상세하게 다룬 내용이다.
금융 문맹은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월급쟁이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
부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월급 외 소득원을 형성하는 과정은 척박한 환경에서 돈이 꽃피는 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다
돈이 있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유리하다
돈을 벌고 돈을 잃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행운이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월급에만 의존하는 것은 자본주의 게임에서 가장 확실하게 패배하는 법이다
앞서 의도적으로 월급의 부정성을 강조했다는 점을 나는 고백하고 싶다. 왜냐하면 월급은 마약과도 같아 중독되는 것에 경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월급에 중독된 자는 일반적으로 평생 돈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조직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나중에는 조직과 본인을 동일시하며 돈을 버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조직의 후광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며 자랑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마구간에 매여있는 말이 안장을 뽐내듯이 말이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조직을 나가게 되면 그제야 깨닫는다. 그동안 조직 내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이 사실은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부품이었다는 사실을. 조직 내에서 대단해 보였던 자신의 존재가 밖에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월급이란 무엇인가. 월급의 정의는 노동자가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고용주로부터 받는 임금이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월급은 학자금 대출금, 신용 카드 할부금, 주택 담보 대출금, 이외 각종 공과금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생명수와 같다. 충분한 자본 소득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월급이 생애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그들은 월급을 목적으로 삼고 가급적 회사를 오래 다니며 수령하는 월급을 늘린 뒤 은퇴 후 연금을 받는 생활을 목표로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인생의 행로를 부의 서행 차선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반면, 부의 추월차선을 타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월급의 정의는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서 월급은 자본 소득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조직에서 우수한 고과를 받고 승진해서 월급을 높이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한정된 시간을 활용해 어떻게 하면 월급 외 다른 소득원을 만들어 퇴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골몰한다. 앞서 다룬 FIRE족이 바로 이 부류에 속한다.
최근 들어 월급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직장을 자발적으로 관두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왜냐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기성세대처럼 ‘워라밸’을 희생해가며 회사형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하지 않고, 평생직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급쟁이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자본주의 게임의 법칙을 체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들은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월급 외 다양한 방식으로 (창업, 프리랜서, 투자 등등) 돈을 벌고 FIRE 하는 사례들이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면서 퇴사 심리를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월급을 받지 않고 경제 활동을 해보는 것은 분명 가치가 있다. 자기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가 되어 원하는 만큼 일하거나, 전업 투자자로 생활해보는 것은 회사를 다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체험이다. 처음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불확실성의 심연을 접할 때는 벅찬 감동을 느낀다. 경주마의 눈가리개가 탁 풀리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 나만의 시차로 시간이 고요하게 가는 듯한 인상. 주어진 시간표에서 벗어나 시간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때의 기쁨. 마침내 자기의 삶을 살고 있다는 기분. 살아있다는 느낌. 월급과 회사라는 족쇄를 벗어난 사람은 처음에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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