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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ug 26. 2022

왜 우리는 사랑에 실패하는가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스포일러 주의


영화는 남녀가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 지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부한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이 떠오른다. 그러나 알고 보니 반전. 남녀는 이혼을 앞둔 사이이고, 상대의 장점을 말하는 것은 상담가의 권유로 시작한 감정 치료의 일부이다. 여자는 불편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과 상담가에게 폭언을 퍼붓고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 영화는 '결혼 이야기' 라기보다는 '이별 이야기'에 가깝다. 이별을 앞둔 연인이 얼마나 처절하게 서로를 증오하고, 상처 주고, 미안해하고, 슬퍼하고, 후회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주 평범한 방식으로 사랑에 실패한 연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인상 깊은 장면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남녀가 상대의 사랑스러운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누군가와 만나다 보면 단점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본인도 상당한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파트너의 단점이 일방적으로 보인다. 상대의 단점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고통스럽고, 서로 안 맞는다고 생각하며, 때로는 더 나은 옵션이 (이럴 바에는 혼자 있거나 다른 파트너를 물색하는 것)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완벽한 상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수용할 만한' 단점들이 있는 상대가 있을 뿐.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장점을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헤어지기 전에 서로의 장점에 대해서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의무화한다면, 아마도 연인의 결별 빈도가 훨씬 적어지리라.


둘째, 이혼을 앞둔 부부는 크게 싸운다. 이별을 앞둔 연인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 만한 말을 일부러 독하게 한다. 사람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일부러 건드리고 자극하는 것이다. 아주 고약한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이런 심리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동기에 가깝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얼마나 속상한 상황인 지 상대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라 믿고 싶다. 연인끼리 싸우다 보면, 폭언이 오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항상 '침묵은 금이다'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말을 아낄 필요가 있다. 아무리 답답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말이다. 왜냐하면 상대에게 모질게 한 말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오거나 깊은 후회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격분한 부인을 상대로 시원하게 화풀이를 하던 남자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그녀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운다. 마치 아이처럼. 그들은 서로의 폭언을 후회하며 상대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미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셋째. 상대방의 사랑스러운 점에 대해서 말하는 인트로에서 여자는 상황을 회피하며 도망친다. 그러다 관계가 전부 끝난 후, 남자는 우연히 여자가 자신의 장점에 대해 쓴 글을 우연히 발견한다. 이런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는 내용. 남자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는다. 여자는 먼발치에서 남자의 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본다. 만약,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 여자가 이 내용을 남자와 공유했다면, 그리하여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했다면, 그들의 결말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역사에 가정법이 없듯이 사랑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영화를 보고 사랑에 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결혼의 종말>을 쓸 때, 분명히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것이 기억난다. 찾아보니 당시 나는 이렇게 적었다. "모쪼록 책을 쓰면서 나의 사랑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랑이 무엇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도 잘 모르겠지. 다만, 사랑이 '서로 미쳐 버리는 것'만이 아님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사랑의 원형이 금세 타올랐다가 식어버리는 횃불이 아니라 은근한 온기가 시나브로 퍼지는 온돌에 가깝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훨씬 성숙하고 고차원적인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역시 나의 주관적인 사랑관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정열적으로 불타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가장 개인적인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


사랑의 실패를 이별이라 정의한다면, 사랑에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에 실패한다. 원인은 대체로 상황에 기인하거나 (소위 말하는 조건이 안 맞거나,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다르거나, 롱디를 하거나 등등), 두 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에 있다. 우리는 사랑에 실패할 즈음 상대방 탓을 하고 싶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자신에게도 존재한다. 사랑에 있어서, 완전히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는 그리 많지 않다. 모든 사람은 그를 불완전하게 만드는 저마다의 결함이 있다.


고백하자면, 내가 가진 지독한 결함 중 하나는 바로 회피형 성향이라는 것이다. (회피형 성향에 대해서는 아래 참고. 성인애착 유형 테스트는 여기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상대와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애인의 단점이 발견되면 헤어질 구실을 찾거나, 갈등이 생기면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미련 없이 관계를 끝내는 것이 회피형 성향의 특징이다. 더러는 이런 회피형 성향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 때, 특히 집착형 성향이 회피형 성향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회피형 성향과의 만남이 관계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뿐더러, 관계가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끈끈하게 유지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b3RtFhzruk

처음에는 회피형 성향을 문제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독립적인 어른이라면 회피형 성향의 기질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결함이고, 매번 사랑을 실패하게 만드는 장애 요소 인지 말이다. 몇 년 전부터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깊이 반성하기 시작한 이후, 나는 의식적으로 회피형 성향에서 탈피하고 안정형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사람이 변하는 것이 정말 쉽지는 않다. 다만, 좋아하는 상대에게 애정표현을 하고 감정에 공감하려는 (다소 엉거주춤하게) 자신을 볼 때면 그래도 과거보다는 진전이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 말이다.


 우리는 사랑에 실패하는가. 많은 점에 있어서 원인은 상황과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토록 미운 상대방 역시 사랑에 실패하는데 지친 가련한 영혼일  있다. 미워하지 말자. 용기를 내보자. 자신의 결함을 인정할 용기. 타인의 결함을 포용할 용기. 용서할 용기. 도망치지 않을 용기.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상처받을 용기. 포기하지 않을 용기. 어쩌면  실패로 끝날지도 모를 사랑을 시작할 용기. 사랑의 실패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처를 받는다. 상처가 튼튼한 굳은살로 변하면 다행이겠지만, 상처가 심해 아예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으려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마음속에 상처 하나 없는 어른이 있을까? 사랑하라,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나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다시 사랑에 실패할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때, 사랑에 실패한  잔뜩 움추려 있을때, 나는  글을 꺼내 천천히 다시 고는 감히 용기를 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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