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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l 29. 2017

호밀밭의 파수꾼, 박하사탕 그리고 꼰대

꼰대가 되기 싫다

호밀밭의 파수꾼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튼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는 중2병에 걸린 10대 소년이다. 소설은 홀튼이 네 번째 퇴학을 당한 후 겪는 일들을 주로 다루며, 그 와중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선을 따라간다. 차마 퇴학 사실을 집에다 알리지 못한 채, 홀튼은 나름의 일탈을 하며 며칠간 방황한다. 하지만 본성은 착한 아이인지라, 홀튼은 선을 넘는 일탈은 실패하고 허당끼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다.


홀튼은 속물근성, 가식, 위선으로 가득 찬 기성사회에 지독한 환멸과 구토를 느낀다. 작가는 중2병에 걸려 매사에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홀튼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godamn"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표현을 (적어도 1950년대에는) 거침없이 사용한다. 이 소설은 기성사회에 환멸을 느낀 미국 젊은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특히나 존 레넌 암살범이 "모든 사람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 고 밝혀 전 세계에 충격을 줬었다. 


이처럼 매사에 반항적이고 까칠한 홀튼도 애정과 연민을 느끼는 대상이 있으니, 바로 동생 피비다. 소설 속 피비는 아직 어른들의 세계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상징이다. 홀튼은 이러한 순수를 지키고자 기꺼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자처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 <호밀밭의 파수꾼> 中 -


박하사탕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는 닳고 닳은 중년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명장면. 철로 위에서 무릎을 꿇은 영호가 "나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는 이 남자의 인생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는 챕터별로 이 남자의 인생의 기(期)를 보여주며, 한 남자의 순수가 어떻게 부식되어가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첫사랑이 건네준 박하사탕 하나에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고 기뻐했던 순박한 영호는 점차 폭력적인 형사로, 바람을 피우는 남편으로 변해간다.


영호는 보통의 사람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곧 순수에 대한 도전이며, 살면서 받는 크고 작은 상처들로 얼룩진 순수는 마음속 깊은 동굴로 들어가 버린다. 어른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순수를 꼭꼭 감추고 살아가지만, 때때로 순수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어린 왕자>가 스테디셀러인 것은 그만큼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어른들의 갈증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중년의 영호가 어떻게 순수를 잃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며 관객에게 순수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질문거리를 던진다. 당신은 현재 오롯이 순순함을 지키고 있나?    

  

영화 <박하사탕> 명장면 "나 돌아갈래!"

그리고 꼰대

얼마 전 모교 재학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직장인인 나를 연장자로 대하고 어렵게 대하는 게 느껴져서 (마치 내가 10년 전 직장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꼰대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의 정의는, 경험을 무기로 자신의 가치관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순수의 파괴자다. 가치관은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응고된다. "A라는 상황에서 B처럼 하니 C처럼 되더라"라는 귀납적 추론을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며 경험을 쌓고 나름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은 연륜이 된다.


그런데 가치관이 단단한 고치처럼 너무나 견고하게 응고되어, 자신의 그것을 절대 진리인 양 일반화하여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꼰대다. 이들은 "내가 살아보니까 말이야~" 라며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해결책을 제시해주려 하는데, 막상 듣는 이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나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순수의 부식을 합리화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를 따를 것을 강력히 종용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변 꼰대들을 보며 역시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군"이라고 합리화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가 조금씩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바람이 생겼는데 바로 "꼰대가 되지 말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꼰대가 돼가는 관성에 저항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경험이 축적한 가치관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용인하기는 쉽지 않으며, 만약 자신의 주변 또래들이 다 같이 꼰대가 되어간다면 본인이 꼰대화 되고 있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테니까. 기성사회에 염증을 느끼던 홀튼이 과연 21세기에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자처할까? 이제는 70세가 돼버린 홀튼이,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핑크색으로 염색한 10대 손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수 십 년 후 나의 현재 가치관에 익숙하지 않은 현상들 (이를테면 로봇과의 연애)에 대해서 얼마나 관대할 수 있을까?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세는 포용력이다. 설령 나의 가치관에 반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길 줄 아는 것. 나보다 경험이 적더라도 충분히 타인의 가치관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것. 자신이 촘촘하게 쌓아 올린 가치관의 그물망이 사실은 굉장히 작은 고치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이러한 것들을 인지하는 것이, 어른이 되면서 꼰대가 돼가는 관성에 저항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순수의 부식에 저항하는 철들지 않는 어른. 꼰대가 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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